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사촌 동생이 고3일 적 내게 자신의 진로를 놓고 의견을 물어온 적이 있다. 외동으로 자란 녀석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의 추렴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열두 번 죽었다 깨도 못 갈 학과들이 친척 어른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동안 정작 그 어떤 이름에도 녀석의 의지는 담기지 않은 듯했다.
"언어학과 어때? 얼마 전에 이란 책을 읽었는데 전 세계의 90퍼센트가 가장 많이 쓰이는 백 개의 상위 언어를 사용하는 거라더라. 최소한 6천 개 정도의 언어를 나머지 10퍼센트가 쓴다는 얘기인데 언어의 사멸은 곧 생태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거잖아. 이런 거 한번 공부해볼 만하지 않아?"
녀석은 이게 무슨 입으로 물방귀 뀌는 소리냐 싶은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좋으면 누나가 가든가." 철학과는 어떠냐는 권유에 철학관 차려 뭐하냐는 귀먹은 할머니 말씀은 또 뭐라니.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효자답게 녀석은 법대에 갔고 졸업도 하기 전에 고시 패스를 해서 지금은 대형 로펌에 다니며 잘 먹고 잘 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고소 사건이 난무하는 나라인데다 제 적성에도 딱 들어맞는다니 꽤나 얄밉기까지 한 녀석. 연이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 소식에 마음이 돌 매단 것처럼 묵직해서 놓아보는 어깃장이다. 유서 속 미안하다는 말 대신 연서 속 행복하다는 말 나오게끔 이 천재들, 살릴 방안은 없는 걸까.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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