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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연천 DMZ 트레킹

입력
2012.05.0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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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시작한 곳에서 사격장의 소총이 격발하는 소리를 들었고 출출해 쉰 곳에선 진지훈련을 마친 자주포 포대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임진강 줄기를 거슬러 오르는 연천 트레킹. 무기의 풍경을 들이미는 건 코 앞의 군사분계선을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겨우 한 시간 떨어진 이 길의 호젓함을 강조해보려는 짓이다. 조금은 헐벗은 듯한 산과 들, 군용 차량이 피우는 먼지마저 고적한 풍경의 하나로 녹아 있는 곳. 연천으로 트레킹을 다녀왔다.

'연천 DMZ 트레킹 코스'로 이름 붙인 이 길은 접경선을 따라 남서에서 북동으로 급하게 뻗어있다. 비무장지대 남쪽 테두리를 따라 논밭길과 강둑, 마을 고샅길 62.2㎞를 이었다. 접경이라지만 강원도 지역과는 달리 평평한 강변길이다. 건강한 어른의 걸음으로 4~5시간이면 한 개 코스(평균 15㎞)를 걸을 수 있다. 힘들지는 않지만 다른 트레킹 코스에 비해 편의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숲이 우거진 곳에 비하면 그늘도 아쉽다. 마실 물과 볕을 피할 채비를 충분히 챙겨 트레킹에 나서야 한다.

트레킹 코스는 황포돛배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장남면 두지나루 곁 다리(장남교)에서 시작된다. 길은 논밭 고랑과 강둑을 따라 느릿느릿 이어진다. 꾸미지 않은 농촌의 풍경이다. 어설피 외국 전원을 흉내 내는 다른 곳과 차이가 있다. 예쁠 것도 없고 미울 것도 없는 여여(如如)한 옛길 풍경. 강은 부박한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본디의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걸으며 바라본 봄의 강물은 아직 얕았다. 수면은 빛난다기보다 간신히 윤기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모래톱에서 야트막한 낚시를 드리운 모습이 다소 어색해 보였다.

1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되는 지점,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다소 드라마틱해진다. 과거에도 이 물길의 풍광은 눈에 띄었던지 여러 시대의 이야기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북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급하게 남쪽으로 방향을 꺾는 곳에 숭의전(사적 제223호)이 있다. 조선 태조의 명으로 고려의 충신들을 모신 사당이다. 머지 않은 곳에 고구려 시대 성곽 흔적인 연천당포성(사적 제468호), 겸재 정선의 대표작 중 하나인 '웅연계람'의 배경으로 추정되는 언덕 등이 모여 있다. 접경이 아닌 곳에 있었다면 하나같이 명승지로 관광객깨나 끌어들였을 법한 이야기와 풍경들이다.

숭의전에서 동쪽으로 향하던 길은 동이리에서 북으로 꺾인다. 그런데 강변으로 빠지는 샛길이 따로 나 있다. 길이가 1.5㎞에 이르는 웅장한 주상절리를 배경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있는 강변이다. 겨울이면 육각기둥 형태의 장관을 얼어붙은 강 위로 걸어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가을에 단풍이 곱게 드는 자리는 지금 막 빨아들인 녹색으로 뒤덮였다. 성급한 물놀이객이 보트를 끌고 온 모습도 보였다.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고픈 마음이 끓었다. 참고 걸음을 돌려 트레킹 코스로 돌아왔다. 임진강은 멀리 북에서 흘러오고 있었고 길은 그 쪽을 향해 다시 길게 뻗어 있었다.

연천=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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