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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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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23>

입력
2012.05.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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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팔천여 명이 조선에 들어왔다는데 평양에서 청군과 싸워 이긴 뒤에 경복궁에 들어가 왕을 강박하여 저희 마음대로 새로운 대신들로 친일 내각을 세운 뒤에, 조선 관군과 지방 영병들을 동원하여 민란의 잔병 토벌에 나섰다는 소문이 온 장터에 자자했다. 아마 전국에서 우리가 사는 갱갱이(江景)만큼 나라 소식이 빠르게 전해지는 고장은 없을 거였다. 사방팔방으로 닿은 길을 오가는 장사치며 상단이 조선 팔도 안 가는 데 없이 다닐 뿐더러, 뱃길로는 금강을 타고 공주 회덕에까지 닿으며, 바다로는 부안 거쳐 영광 법성에 이르고 위로 당진 아산 돌아서 인천 경강(京江)에 이르니 앉아서 한양 궁궐의 사정과 팔도 백성의 형편을 얻어들을 수 있던 것이다.

위로는 황해도와 강원도, 그리고 충청도의 첫 길목인 천원 목천에서부터, 공주 아래로는 토벌군이 삼로로 나누어 일부 경상도로 가고, 많은 군사가 충청도 각 지방 군현과 전라도를 휩쓸고 있다는 소식으로 민심이 흉흉했다. 지방에 따라 작게는 백여 명에서 많게는 천여 명에 이르기까지 학살되었다는데, 천지도의 민병뿐만 아니라 전투가 일어난 인근 지방의 백성들까지 함부로 죽이고, 빼앗고, 부녀자를 강간한다는 거였다. 그뿐만 아니라 도에 들거나 동조했던 아전이나 관원들은 물론이요, 무슨 대수라도 난 것처럼 휩쓸려 다녔던 농군들 중에도, 도인들이며 난리에 참가했던 동료들을 발고하여 상금도 타고 벼슬도 얻어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해 내내 전국 팔도에서 몰리던 천지도의 패잔병들과 토벌군 사이의 싸움이 계속되었으니, 일본군과 더불어 자기 백성에 대한 골육상쟁에 나선 관군의 병력이었다. 이러니 나라가 망하지 않고 배겨낼 수가 있었겠냐고.

이신통이 우리 집에 온 지 칠 일쯤 지나서 안 서방이 뒷방으로 달려왔다. 장꾼들 말에 의하면 어제 논산 남쪽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는데 민병은 거의 반나마 죽고 일부가 대둔산 방향으로 달아났다고 그랬다. 그리고 감영에서 나온 기찰포교들이 동정을 살핀다며 주막거리나 나루터에 목을 잡고 지킨다고도 했다. 이신통과 안 서방은 말했다.

노성 사람들과 여산 두레패 농군들일 거요.

북대와 남대가 모두 흩어져간 뒤에 남은 사람들이라대. 즈이들이 막판 싸움을 하겠다구 그랬다네.

신통이 소매를 들어 젖은 눈을 닦았다.

그이들 몇 년 전에 세곡을 떼어먹은 현감을 쫓아낸 사람들이오. 주동했던 이들이 대둔산에 숨어 살다가 천지도에 연줄이 닿았다오. 달리 어디로 갈 곳도 없는 사람들이었지.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들기 싫어서 말은 안 했지만, 관군 복색을 하고 오 동지네를 털었던 그 눈이 부리부리한 두령이 생각났다. 연말까지 남도의 끝이라는 해남과 장흥으로 몰린 민병들이 토벌되었고, 그 이듬해 정월에 관군과 일본군이 귀순한 자를 앞세워 대둔산을 급습하여 모두 소탕하는 것으로 난리가 끝났다.

이신통은 한 달 만에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나와 뒷마당에서 장작도 패고 집안일도 거들었다. 나는 그이와 함께 뒷방에서 살림 살며 이제는 더 이상 나쁜 일이 오지 않으리라 여기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나서 그이는 책을 보고 나는 옆에서 그이의 버선볼을 받고 있었다. 신통이 문득, 말하였다.

나는 이번에 민란이 패망할 줄 알았지.

그럼 망할 줄 알고서 따라갔단 말이우?

나뿐만 아니라 스승님과 행수들까지도 그랬다네.

왜 첨부터 말리지 않구선, 싸움에 나서기까지 한단 말요?

토호와 관리들에게 핍박을 당하던 백성들이 분을 참지 못해 일어섰는데, 아무리 말려도 들어야지. 사실 때가 아니었다네. 과실이 다 익어서 꼭지가 떨어질 만한 때가 있는 법인데. 그러나 다들 싸우겠다는데 망해두 함께해야 되잖은가.

어찌 그와 함께 살았던 날을 하루씩 쪼개어 낱낱이 이야기할 수 있으랴. 나중에 그가 곁에 없게 되었을 때, 가뭄의 고로쇠나무가 제 몸에 담았던 물기를 한 방울씩 내어 저 먼 가지 끝의 작은 잎새까지 적시는 것처럼, 기억을 아끼면서 오래도록 돌이키게 될 줄을 그때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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