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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블랙리스트 시행 첫 날… "그게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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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블랙리스트 시행 첫 날… "그게 뭐예요?"

입력
2012.05.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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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블랙리스트 제도(휴대폰 자급제)가 시행된 첫 날인 1일 서울 왕십리의 한 대형 마트. 디지털기기 코너 담당자에게 "휴대폰 팔아요?"라고 물어봤더니, 그는 "금요일부터 판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제도에 따라 공(空) 휴대폰을 파는 거냐"고 재차 물었더니,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동통신 3사 판매점이 임대매장 형태로 들어온다"며 공사중인 매장 한 켠을 가리켰다.

역시 블랙리스트 제도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냥 이동통신 판매점이었다. 다른 직원은 "블랙리스트 제도가 뭐냐"고 되물었다.

블랙리스트란 지금처럼 이동통신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을 거치지 않고 대형마트, 전자제품 대리점, 온라인 쇼핑몰 등 다양한 유통매장에서 휴대폰을 구입해 사용하는 제도다. SK텔레콤용 혹은 KT용 아닌 공 휴대폰을 구입해 유심칩만 끼우면 그냥 개통되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유통경로 다양화를 통해 휴대폰 가격을 떨어뜨리고, 이용자들도 자유롭게 휴대폰을 바꿔 사용할 수 있다며 떠들썩하게 홍보했던 블랙리스트 제도는 말 그대로 유명무실했다. 아무리 시행초기라고는 하지만, 대형마트 어디서도 소비자가 구입해 스스로 개통할 수 있도록 휴대폰을 판매하는 곳은 없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홈쇼핑 채널도 마찬가지다. 오픈마켓인 G마켓은 블랙리스트 제도에 대비해 제조사별 휴대폰 판매코너를 만들어 놓았으나, 실제 제품을 판매하지는 않았다. 인터파크나 H몰, 현대홈쇼핑 등은 아예 판매계획이 없다고 했다.

왜 현장에선 블랙리스트 제도가 무력화된 것일까. 유통업체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휴대폰 제조사들로부터 판매용 휴대폰을 공급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휴대폰 제조사들이 판매할 상품을 주지 않아 아예 매대를 만들지 않았다"며 "그렇다고 팔리지 않을게 뻔한 저가 중국산 휴대폰을 들여올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조사들은 휴대폰을 공급하지 않는 이유는 또 뭘까. A제조사 관계자는 "얼마나 팔릴 지 알 수 없는 공 휴대폰을 따로 만들 수는 없다"며 "블랙리스트 제도를 위한 공 휴대폰을 준비는 하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출시되는 휴대폰은 각 이동통신사별 전용메뉴나 특수기능이 탑재되어 있는데, 제조사가 블랙리스트용 공 휴대폰을 공급하려면 이런 기능을 모두 삭제한 제품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블랙리스트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더 큰 이유는 보조금이다. 블랙리스트용 휴대폰은 이동통신사 보조금은 물론 제조사 보조금도 없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A사 관계자는 "이동통신사는 보조금을 줘도 다달이 통신료를 받아 보충하지만 제조사는 그런 것도 없는데 보조금을 줄 이유가 없다"며 "결국 블랙리스트용으로는 중저가폰을 공급해야 하는데 이용자들의 눈높이가 프리미엄폰에 맞춰져 있어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점들도 같은 시각. 하이마트 관계자는 "종전처럼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구입하면 보조금에 요금할인까지 되는데 누가 마트에 와서 기기만 사겠는가"라며 "그래서 블랙리스트용 휴대폰 판매 여부를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로선 중고폰 정도나 블랙리스트용으로 거래될 전망이다. 방통위측도 하반기는 되어야 휴대폰도 출시되고, 요금할인여부도 결정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동통신사 위주의 유통질서를 깨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며 "정말로 유통망을 다변화할 생각이었다면 휴대폰 공급부터 요금제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시작해야 하는데 당국이 준비도 없이 시행에 들어는 바람에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허재경기자 ricky@hk.co.kr

고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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