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면당 높은 담을 넘어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국립국악원이 이번에는 세종대왕을 저잣거리로 모시고 온다. 국립국악원이 세종을 기리는 '까막눈의 왕'(5~10일) '세종조회례연'(12~13일) '봉래의'(15일) 무대를 잇달아 펼친다. 각각 창작 소리극, 궁중 예식, 궁중 음악과 무용 등의 형식이다. 국립국악원 예악당, 경복궁 근정전, 여주 영릉 등 유서 깊은 곳에서 열리니 대왕이 깊은 잠 설칠 법도 하다.
'까막눈의 왕'과 '회례연'은 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큰 과제에 대한 답안처럼 느껴진다. '세종조회례연'에서 또 한 번 세종으로 분한 중견 배우 강신일은 "3년 전보다 대사가 10분의 1로 줄어 섭섭하다"면서도 더욱 풍성해진 악가무에 다시 참여한다는 사실이 새삼 느꺼운 듯 했다.
한글 창제는 당시 꿈꾸기도 힘들었던 문화적 대반역이었다. 한글 창제를 트집 잡으려 큰 도끼를 들고 세종 찾아가는 유생들, 움츠리며 살던 무지렁이 아낙들을 대비시키고 그 사이에 세종을 위치 시킨 연출 의도 덕에 지금 후손도 그 심각함을 족히 알만하다. '까막눈의 왕'이 국립국악원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를 굳힌 데에는 무대의 소통 가능성이 큰 몫을 했다. 한글 창제를 미스터리로 푼 영화나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공간감은 현장 무대 예술의 미덕이다.
"세종이 지녔던 애민 사상의 진정성이 관객들에게 보여졌으면 하는 거죠." 민요를 통해 한글 창제의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허구에서 출발한 이번 무대가 예기치 못한 효과를 유발했다는 연출자 정호붕씨의 말이다. 각 도의 민요를 등장시켜 한글의 필요성과 연계시키니 우리 민요가 서사 구조의 뼈대 역할을 훌륭히 해낸 것이다.
세종은 더블 캐스팅이다. 국악원의 판소리꾼 정해석, 연극 배우 장덕주가 맡았다. 둘 다 개성이 있어 보는 재미가 그만일 듯하다. "그 결과가 나도 궁금해요." 연출자는 일단 눙치고 본다. 그는 "작년 근정전에서 첫 공연을 했으니 세종이 꿈꿨던 자주적 문화 국가를 향해 2년째 무대를 만드는 셈"이라며 "이런 정신을 지금 위정자들이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탄신일인 15일부터 열흘 동안, 후손들의 어깻짓에 깊은 잠 깨고 무대까지 강림해야 할 세종은 별난 615돌 생신 잔치를 뭐라 하실까.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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