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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함부로 '멘토'라고 하지 마라

입력
2012.05.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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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고등학교 사회 선생님이지 말투나 행동은 건달에 가깝다.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도 애정도 없다. "이미 학원에서 마스터했는데 뭘 배워"라며 수업도 대충대충,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마음껏 자도록 내버려 둔다. 욕을 입에 달고 산다. 사는 곳도 지저분한 옥탑방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나누어줄 햇반까지 태연하게 가로채 먹는다. 다문화가정 문제를 다룬,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 이자스민씨가 출연한 영화 의 동주(김윤석)다.

이런 인간이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다. 동네 강아지 부르듯 심심하면 등이 굽은 3류 춤꾼 아버지와 사는 완득이(유아인)를 불러대고는, 때리고 괴롭히고 놀린다. 호적등본까지 들먹이면서 뜬금없는 엄마 이야기로 혼혈아를 만들어 버린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교회에 가서 '제발 똥주 좀 죽여달라'고 기도해도 소용없다. 끈질기게 달라붙어 엄마 이야기를 해댄다. 완득이는 차츰 깨닫게 된다. 선생님이 자신에게 주고자 했던 것을. 이 세상에 둘도 없이 소중한 어머니였다.

만약 동주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완득이는 평생 엄마의 존재, 사랑, 가치를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그리워하던 아들의 이름 한번 부르며 안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미래와 희망조차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단지 가난한 나라에서 온 피부색 다른 사람이라는 이유로 멸시 당하는 그들이 바로 이웃이고 엄마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깡패 같은 멘토 동주 덕분이다. 그는 인권에 무심한 아버지를 고발할 만큼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돕는 일에 신념을 굽히지 않는, 정직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는 거칠고 강압적이고 무뚝뚝했다. 고집스럽게 완득이를 괴롭혔고, 때론 빈정거리며 오지랖 넓게 간섭해 멘티 완득이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생색을 내거나 동정하는 자세도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 눈높이를 맞춰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동주가 그렇게 완득이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아낀다는 사실을 안다. 소중한 상대라면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욕을 먹도록 만들지 않는다. 오직 손발처럼 따르는 심복과는 다르다.

멘토의 표본은 조선시대 번암 채제공이다. 사색당파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으며, 사도세자 폐위를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해 영조에게까지 "진실로 사심 없는 신하"란 소리를 들었다. 정조의 멘토가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공정함과 양심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정조가 조금이라도 어긋난 길을 가려고 하면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만약 그가 아부와 눈치보기로 멘티의 눈과 마음을 흐리게 하고, 왕의 권력을 빌어 호가호위하고 사욕을 채웠다면 심복 홍국영만도 못한 인물이 됐을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에서 아름다운 멘토로 꼽힌 김태원이나 이선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때론 질책으로, 때론 칭찬으로 멘티들의 재능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사심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게 멘토는 단순히 노래를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인간적 교감까지 나누는 존재가 됐다. 표현의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서로 신뢰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멘토가 꼭 똑똑하고, 잘나야 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결국 참다운 사랑이다. 진정 멘티를 사랑한다면 결코 잘못된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거나 부추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잘못으로 멘티까지 부끄럽고 욕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뇌물수수로 구속됐다. 누구보다 참된 조언자가 되겠다고 공언했던 사람이었다. 뒤집어보면 멘토로서 올바른 사랑이 부족했단 말도 된다.

세상에 멘토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다. 학교 기업 교회 경찰 군대에도 멘토가 있다.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인물 주변에도 있다. 그 중 과연 몇 명이 진짜 멘토일까. 참된 사랑이 없는 한 함부로 멘토라고 말하지 마라. 누구의 멘토가 된다는 것은 신화 속의 이야기로 남을 만큼 두렵고 어려운 일이니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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