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한남동 할리데이비슨 코리아 매장은 ‘불량기’가 가득했다. 검정 가죽 조끼와 부츠, 장갑을 끼고 알록달록 반다나(두건)로 머리를 휘감은 이들이 금방 사고라도 칠 듯이 강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언뜻 봐선 헤비메탈 그룹의 느낌이지만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여성. 게다가 40~50대 중년 여성도 여럿 눈에 띈다. 이들은 1년에 단 하루뿐인 ‘여성 라이더(rider)의 날’행사를 위해 모였다.
이 행사는 미국에서 시작했다.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 미국에 첫 선을 보인 대표적 모터사이클 회사. 큰 덩치와 강력한 파워를 자랑해 흔히‘남성들의 로망’으로 불리지만 미국에선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미국 본사는 해마다 5월을 ‘여성라이더의 달’로 정할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선 걸음마 단계다. 올해가 3회째. 국내의 할리데이비슨 라이더는 6,000명에 달하지만, 여성은 100명 남짓에 불과하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관계자는 그러나“2010년까지 새 고객 중 여성 비중은 1~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4%까지 올랐을 만큼 열기가 뜨겁다”고 말했다.
여성라이더 모임 ‘레이디스 오브 할리’의 회장을 맡고 있는 주부 김윤정(38)씨는 “모터사이클은 여성에게 딱 맞는 레저스포츠”라며 “300kg 넘는 무게가 받쳐 주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자동차보다 낮은데다, 3~4회 도로연수만 하면 여성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기 가평까지 한 줄로 왕복 주행을 마쳤다. 김씨는 “어느 날 다른 동호회 모임에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갔더니 그 이후로 다른 회원들이 말을 걸지를 않더라”라며 “라이더라면 기가 세고 거칠 것이라는 오해가 가끔은 힘 들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도 이들이 또 다시 라이딩을 하는 이유는 뭘까. 김태선(59)씨는 남편이 운전하는 모터사이클의 뒷자석에 타는 ‘텐덤(Tandem)’을 하다 지난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김씨는 “탠덤과 운전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다소 지치던 일상에서 큰 활력을 얻었고, 남편과 함께 라이딩을 하는 주말이 기다려 진다”며 웃었다.
여성 라이더 증가가 보여주듯 2009년 2,200여 대 수준이었던 국내 대형 바이크(배기량 500cc 이상) 시장 규모는 2010년 2,600여 대, 2011년 2,800여 대로 계속 증가하고 있다.
BMW모토라드코리아 신진욱 이사는 “주 5일제 시행 등으로 과거와는 다른 독특한 레저 문화와 취미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FTA 관세 인한 효과로 가격이 50만∼100만원 가량 낮아지고 3,000만원 대 위주였던 제품 라인업이 1,000만∼2000만원 대까지 다양해 졌다”라고 설명했다.
업계도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는 3월말부터 KT렌탈과 손잡고 업계 최초로 ‘장기 렌탈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1,100만원대의 ‘수퍼로우(XL883L)’ 모델을 월 20만원 정도(36개월 동안)에 자유롭게 타고, 렌탈이 끝나면 자기 소유가 된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관계자는 “가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지금까지 40대 이상 남성이 주로 탔지만 렌탈 서비스 실시 이후 여성 고객과 20∼30대 젊은 남성 들의 구매 문의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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