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서 수상하게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요." 2010년 2월 밤 11시쯤 경기경찰청 소속 A 경찰관은 이런 신고에 경기도의 한 빌라로 출동했다. 신고자와 이웃 주민의 말을 들어보니, 20대 여성 혼자 사는 집에서 심한 소음이 나 수상하다는 거였다. 집 주인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옥상 쪽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강도가 창으로 침입해 폭행을 하거나 집기를 헤집고 있을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A경찰관은 119 소방대원과 함께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그러나 집 안에 절도범이나 강도범은 없었다. 되레 집 주인은 '집 현관문은 어떻게 하느냐'며 경찰에 수리비 40만원을 요구했다. 당황한 A 경찰관은 집 주인에게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사정을 설명하며 5만원을 물어주는 선에서 겨우 마무리했다.
이 정도 액수는 약과다. 2008년 11월 경남의 한 일선 경찰서에서 무허가 도박게임장이 영업 중이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나 출입문이나 창문이 모두 잠겨있어 강제로 열고 들어갔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업자가 게임기를 이미 옮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경찰에 '출입문 등 망가진 집기를 보상하라'고 요구했고, 당시 출동했던 경찰들은 십시일반으로 50만원을 모아 변상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7조는 '인명ㆍ신체 또는 재산에 위해가 절박한 때 위해 방지 또는 피해자 구조를 위해 부득이하다고 인정할 때 타인의 토지ㆍ건물 등에 출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범죄혐의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인의 재산에 피해를 준 경우, 이를 사비로 보상해야 한다. 합법적인 법 집행에 따른 피해는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손실보상제'가 도입되지 않아서다. 경찰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보상해줘야 하는 돈의 액수도 만만찮다. 30일 경찰청이 2008~2009년 일선에서 경찰이 사비로 개인의 손실을 보상해준 사례를 모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46개 경찰서에서 1년에 7억3,000만원을 물어준 것으로 추산됐다. 경찰서 한 곳당 연 300만원 꼴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이 적법하게 직무를 집행하다가 개인에게 손실을 입혔을 때 강제로 보상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들이 강하게 항의하고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사비로 물어주는 일이 빈번하다"고 말했다.
이는 경찰이 초동 수사단계에서 적극적으로 탐문을 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원 20대여성 살해사건'에다 28일 발생한 '수원 남녀동반 사망사건'으로 또다시 경찰의 부실한 탐문수사가 도마에 올랐지만,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 "잘못은 인정하지만, 수사를 제대로 하도록 제도도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이미 독일, 대만 등은 경찰직무관련법에 경찰권 행사에 따른 손실에 대해선 국가가 보상해주는 법 규정을 도입했다. 우리도 2008년 손실보상제 도입을 뼈대로 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4년째 국회에 발목이 묶여 있는 상태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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