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2일 중국에 머물기로 결정하고 베이징(北京)의 미국 대사관을 나와 병원으로 이동했다. 이와 관련 중국이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자, 천 변호사가 할 수 없이 중국에 남기로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또 미국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천 변호사를 대사관으로 데리고 들어간 것이라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등 공세로 전환하고 나섰다.
중국 신화통신은 이날 천 변호사가 6일 동안 머문 미국 대사관을 스스로 떠났다고 전했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미국 고위 관리를 인용, "천 변호사가 대사관을 떠나 베이징 차오양(朝陽) 병원으로 갔다"며 "그가 중국에 남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미중전략경제대화에 참가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천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한 뒤 "중국이 그가 대학에서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정부는 미국의 내정 간섭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류웨이민(劉爲民)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 대사관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중국 공민인 천광청을 대사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며 "이는 중국의 내정을 간섭한 것이므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중국은 미국에 사과와 함께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들을 처리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보증할 것을 요구한다"며 "미국은 국제법과 중국의 법률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이날 밤 늦게 클린턴 장관의 언급과 관련, "미국이 자신의 책임을 감추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쓰며 사건을 호도하고 있다"며 "미국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미국측을 압박했다.
이에 따라 천 변호사의 미국행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천 변호사가 미국으로 갈 계획이라면 대사관을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가 '내정간섭' 운운하며 미국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선 상황에서 그를 미국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양국 관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천 변호사를 만난 인권운동가 후자(胡佳)는 "중국에 남아 장애인 인권을 위해 일하길 원한다"는 천 변호사의 뜻을 전한 적이 있다. 천 변호사가 미국에 망명할 경우 개인적으로는 자유를 얻겠지만 가족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인권 운동가로서의 위상도 크게 손상될 것이란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미 CBS는 천 변호사가 중국에 남기로 한 것은 중국 정부가 그에게 미국으로 떠날 경우 부인이 맞아 죽을 수도 있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라는 지인들의 주장을 전했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의 푸시추(傅希秋) 회장은 "천 변호사 가족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가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에 따라 천 변호사가 일단은 미국 대사관을 나와 병원으로 갔지만 이곳에서 가족과 만나 결국 미국으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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