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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중국의 길,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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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중국의 길, 한국의 선택

입력
2012.04.3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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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뒤흔든 보시라이 실각 사태가 대충 정리된 모양이다. 쿠데타 정변(政變)설까지 나돌던 어지러운 정국의 짙은 안개가 석 달 만에 걷혔다. 드러난 소용돌이의 실체는 중국 체제의 행로를 둘러싼 노선 갈등이다. 살인 부패 불륜 등 온갖 선정적 스토리가 얽힌 권력 투쟁은 겉모습이거나 허구적 드라마일 수 있다.

사태는 드라마틱한 첩보영화처럼 시작했다. 보시라이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심복이 이웃 청두(成都)의 미국 영사관에 피신한 사건은 센세이션을 불렀다. 그는 영국인 변사 사건에 보시라이 부인이 연루된 사실을 보고한 직후 경질됐고, 신변 위협을 느껴 피신했다고 한다. 그를 뒤쫓은 충칭시 공안과 청두시 공안이 대치했고, 중앙에서 급파된 고위 관계자가 그를 베이징으로 압송했다는 줄거리다.

뒤이어 쏟아진 소문과 추측은 흥미진진했다. 과다 음주와 심장마비로 숨졌다던 영국인은 보시라이 부인이 독살했고, 그는 보시라이가 부정 축재한 돈을 해외로 빼돌리는 걸 도왔고, 영국 첩보기관 MI6와 연결됐다는 스토리가 이어졌다. 보시라이 부인의 불륜설, 아들의 페라리 스포츠카와 망나니 짓은 흔한 사족이다.

막장 드라마는 보시라이가 해임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중국 당국은 "당 기율을 엄중하게 위반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관영 통신은 영국인 타살 혐의를 재조사한다고 보도, 드라마의 사실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소문의 안개가 걷히면서, 확인되지 않은 선정적 스토리보다 중국 지도부의 노선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사태 초기 우리 중국 전문가들도 주목한 '충칭 모델'을 둘러싼 갈등이다.

충칭 모델은 보시라이가 인구 3,000만 명의 거대 도시 충칭을 중국의 새로운 발전 모델로 이끌면서 국제적 관심과 연구 대상이 됐다. 그 중심은 덩샤오핑 이래 일관되게 추진한 시장경제 모델을 벗어나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건설 목표로 내세운 민생과 분배 우선이다. 보시라이가 대표하는 '신좌파'가 사회주의 노선으로의 회귀를 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충칭 모델은 개발토지의 환수를 통한 대규모 산업단지 등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골격으로 삼았다. 남서부 내륙 충칭에 서구와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한 배경이다. 보시라이는 농민 1,000만 명에게 10년 안에 공공주택을 주는 정책을 추진, 민중의 환호와 포퓰리즘 비난을 함께 받았다. 게다가 정신적 멘토라고 공언한 마오쩌둥의 혁명가를 부르는 창홍(唱紅) 캠페인을 폈다. 시 전체에 홍기(紅旗)를 내걸고 TV 상업광고를 금지했다. 이는 조직범죄와 정치부패 척결 캠페인 다헤이(打黑)를 강행하면서 개인재산을 강제 몰수하는 등 법치를 벗어난 것과 함께 논란이 됐다. 중국 지도부는'인민의 영웅'보시라이의 대중 선동을 경계했다고 한다.

시장경제 성장 정책으로 빈부 격차와 민중의 불만이 커진 상황에서 베이징의 수십 배 크기 충칭의 통제 이탈은 문화혁명기 포퓰리즘 광란의 악몽을 되살렸다. 세계 경제위기로 충칭 모델이 더욱 부각된 사실은 지도부 교체를 앞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위협, 정책 추진에 중대한 장애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태를 중국 지도부의 치밀한 각본에 따른 드라마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체제 노선을 벗어난 인물을 개인숭배, 종파주의로 몰아 숙청한 과거와 달리 살인과 부패 등 법치의 틀을 적용했다. 또 막대한 재정 적자 등 충칭 모델의 폐해를 적시, 국민 설득에 힘 쓰는 모습이다. 해외 반체제 인터넷 언론 등 외부세계가 권력 투쟁과 체제 불안을 강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는 중국의 소용돌이를 그저 흥미롭게 구경한 듯한 인상이다. 분배와 성장의 선택을 놓고 대선에서 진정으로 치열하게 싸울 뜻이라면, 정치든 언론이든 훨씬 심각하고 진지하게 관찰할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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