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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청소년문학상 3월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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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청소년문학상 3월 장원

입력
2012.04.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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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국국어교사모임과 한국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문장청소년문학상 2012년 3월 시 장원에 김광현(충북 괴산고ㆍ필명 쎄렌체)군의 ‘노을’이 선정됐다. 이야기글에서는 배유진(경기 푸른중ㆍ필명 유진과 유진)양의 ‘거미’, 생활글에서는 김형철(서울 한영외고ㆍ필명 손자)군의 ‘막대사탕을 들다’, 비평ㆍ감상글에서는 신혜정(경기 고양예고ㆍ필명 몽니) 양의 ‘_온점을 경계하라’가 선정됐다. 당선작은 문장글틴 홈페이지(teen.munjang.or.kr)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일보사와 한국문화예술위, 전국국어교사모임은 문장글틴 홈페이지를 통해 연중 청소년 글을 공모하고 있다.

노을

김광현

노을이 번진다 이태원의 삐끼들도 하루를 여민다 늙은 콘크리트 건물 사이로 눈부신 노란 햇살이 떨어진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본다 공기는 더러워도 노을은 여전히 눈부시다 보도블록 사이를 걸어가다 거리 속에 차차 녹아드는 사람들 노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다리를 건넌다

다리 밑으로는 더러운 물이 흐른다 푸른 물을 본 지는, 아마도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물 위로 번진 기름막이 무지개빛으로 번들거린다 검은 무지개 아래 사는 물고기는, 오래 전에 숨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것도 검은 무지개일지도 몰라 언뜻 보면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는 유독성 가스로 질식할지도 모르지

이어폰에서는 몽환적인 노래가 흐른다 소녀는 꿈이 있었지 그런데 그 꿈은 마술을 한 것처럼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어 삶은 그런 거야 살아가는 이들을 아주 힘겹게 만들지 삶의 바퀴는 나비를 찢고 모든 눈물은 폭포가 되고 폭풍이 부는 밤에는 그녀가 눈을 감을 거야 폭풍이 부는 밤에 날아갈 거야 폭풍이 이는 하늘 아래 누워서 그녀는 말할 거야 난 알아 태양은 지고 다시 뜬다고

매일 검은 비닐봉지 아래로 짝퉁 백을 쑤셔 넣어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골목으로, 다시 손님들이 기다리는 으슥한 곳으로 뛰어가야 하는 삐끼 인생 이태원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어쩌면 나를 닮은 짝퉁 백을 파는 내 인생도 짝퉁 인생일지도 몰라 아니 거짓과 아픔으로 점철된 이 모든 세상이 아마 짝퉁일지도 모르지 짝퉁이 진품으로 진품이 짝퉁으로 둔갑하는 세상

멀리 보이는 검은 산 아래로 해가 떨어지네 이른 저녁이 붉은 노을의 커튼을 걷고 있네 안 돼 안 돼 밤이 두려운 유년 시절이 떠오르네 추억과 기억 모두 얄팍한 비웃음으로 반겨주네 밤이 되면 나는 무력한 파충류마냥 집으로 아스라이 돌아가겠지 지하철을 타고 늙은 나트륨 등 아래를 지나가고 몽환적인 노래를 들으며 내일 아침 다시 밝아올 짝퉁 인생을 힘차게 준비하겠지

▦선정평

자연의 노을과 삶의 노을이 서로 갈마드는 지경이고 보니, 어느 것이 진짜다 가릴 수는 없겠습니다.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어느 새 노을로 번지는 멜랑콜리가 왜 없겠습니까. 삐끼, 즉 짝퉁 여리꾼의 삶을 벗으려는 것도 노을의 또 다른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종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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