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외교관계를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미 주간 타임의 평가처럼, 가택연금 상태에서 탈출한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이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 사건만큼이나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천 변호사가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가 된 것은 산아정책에 반기를 들면서부터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한자녀갖기운동을 하면서 낙태, 유산, 피 등 원색적인 단어를 동원한 섬뜩한 캠페인을 했다. 천 변호사는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가 여성 7,000여명에게 강제로 낙태와 불임수술을 받게 하자 그들의 소송을 대리하다 2005년 가택연금 됐다. 당국의 눈밖에 난 천 변호사는 이듬해 공공재산파괴 및 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돼 산둥성 법원에서 4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천 변호사의 지지자들이 당국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연 집회의 죗값을 뒤집어 씌운 것이다.
2010년 9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할 당시 몸무게가 10㎏ 이상 빠질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지만 당국의 탄압은 멈추지 않았다. 그와 가족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가택연금 상태에서 24시간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천광청에게 자유를'이란 캠페인과 각계의 자발적인 성금 모금이 전개됐고 클린턴 힐러리 미 국무장관은 그의 석방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1971년 산둥성 이난(沂南)현 동스구(東師古)촌에서 태어난 천 변호사는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다. 1994년 칭다오(靑島) 시각장애인고교에 진학할 때까지 문맹이었지만 독학으로 법학을 배워 무료 법률 활동을 했다. 중국의 인권 유린 실태를 폭로한 공로로 2006년 타임에 의해 '세계 100대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됐고 2007년에는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천 변호사의 탈출을 도운 인권운동가들도 고초를 겪고 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자신의 차로 천 변호사를 베이징으로 데려다 준 허페이룽(何培蓉)과 은신처를 제공한 궈위산(郭玉閃)은 당국에 의해 구금된 상태다. 천 변호사의 탈출 소식을 언론에 알린 후자(胡佳)와 그의 아내 쩡진얀(曾金燕)도 심문을 받았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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