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는 어릴 적부터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마침 큰 며느리가 등록을 시켜줘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초등학교 1학년 10반 국어 시간. 신복순(83) 할머니는 공책에 또박또박 편지를 써 나갔다. 썼다 지우길 반복하며 세 문장을 완성하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리긴 했지만, 그는 "스물 셋에 시집 가 친정에 맞춤법이 엉망인 안부 편지를 쓴 뒤 60년 만에 다시 편지를 썼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난달 6일 성인학력인증 교육기관인 양원초교에 입학한 신 할머니는 요즘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이 학교의 최고령 신입생. 재학생 평균 연령(67세) 보다 16살이 많고, 같은 반 가장 젊은 동급생(47) 보다는 37살이나 많아 '왕언니'란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학구열만큼은 뒤쳐지지 않는다. 그는 아직 단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하지 않았고 한 시간 일찍 등교해 예ㆍ복습을 하는 건 물론 토요일 특강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
27일 학교에서 다시 만난 신 할머니는 "길거리에서 읽을 수 있는 간판이 늘어나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고 말했다.
5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난 신 할머니는 어려운 집안 형편과 딸은 학교에 보내지 않는 가정 분위기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언니들과 함께 밭농사와 집안 일을 도우면서도 학교를 다니던 남동생들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나이가 차 시집을 갔지만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남편과 정육점을 운영한 신 할머니는 은행에서 입ㆍ출금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자식들을 출가시키고 15년 전 장사를 그만둔 뒤에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더 강해졌다.
"공부하면 재밌을텐데"라는 말을 흘려 듣지 않은 큰 며느리 권유로 입학한 그는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가 쉽진 않다고 했다. "구구단은 7단이 제일 어렵더라고. 국어는 'ㄼ' 'ㄶ' 같은 겹받침이 정말 헷갈려. 받아쓰기에서 두 세 개는 틀린다니까. 그래도 지난 달에는 '입학소감문 쓰기' 우수상도 받았어."
2년 전 관절염 수술까지 받은 신 할머니의 목표는 건강한 몸으로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다. 그는 "학교 생활이 너무 재미있어 어려운 것도, 힘든 것도 전혀 못 느낀다"며 "대학은 장담 못하지만 건강이 허락하면 중ㆍ고등학교 졸업장도 따겠다"고 다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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