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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코미디가 돼 버린 학교폭력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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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코미디가 돼 버린 학교폭력 실태조사

입력
2012.04.29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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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의 기적’이 오롯이 떠올랐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아니라 2009년 2월16일에 벌어졌던 생생한 실화다. 교육부는 그때 전국 초중고교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두툼한 참고자료까지 첨부해 언론에 뿌렸다. 모든 신문과 방송은 전북 임실을 주목했다. 초등학교 학력미달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라는 정부 자료를 믿었다. 다음날 ‘임실의 기적’, ‘낙제생 없는 초등 공교육 1번지’따위의 제목으로 지면과 TV뉴스는 도배했다.

교육 여건이 열악한 시골 지역이 ‘기초학력 미달 학생 제로’라는 놀라운성과를 거둔 건 우리 언론만 주목한 게 아니었다. 외신들도 세계에 ‘장한 임실’을 각인시키는 데 동참했다. 그런데 정확히 이틀 뒤, 이 ‘임실의 기적’은 거짓으로 반전됐다. 기초학력 미달자가 없다던 정부 발표와 달리 미달자가 있었던 것이다. 한 초등학교가 학업성취도 평가 채점 결과를 묻는 교육청 전화를 받고 “미달자가 없다”고 허위 보고했는데, 이걸 교육부가 그대로 믿고 임실을 학력미달자 전무(全無) 지역으로 둔갑시켰다. 학업성취도가 높은 학교는 인센티브 주지만, 학습부진아들이 많은 학교의 책임자는 문책 검토하겠다는 교육 당국의 엄포가 낳은 한편의 코미디였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측면이 강했다고 여겨진다. 일정 비율로 학교를 선정해 표집방식으로 했을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채점과 관리를 맡음으로써,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왠만큼 신뢰도와 공정성은 담보됐었다. 헌데, 이명박 정부 출범후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全數)로 변경되면서 개별 학교가 채점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딱 그 꼴이었으니, 어떤 부산물이 나올 지는 불문가지였다.

해묵긴했지만 여진이 남아있는 3년전 소사(小史)를 꺼낸 이유는 ‘막장 드라마’ 같은 교육부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사안은 다르지만 ‘임실의 기적’ 오류를 연상시키는 탓이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왜 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일진이 있는 학교를 추려내 폭력을 근절시키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이 100%인 곳인 전국에 15곳이나 된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이 학교들은 전교생 중 1, 2명만 설문에 참여했다. 또 있다. 학교 안에 일진이 있다고한 비율이 100% 인 학교 18곳 역시 설문 참여 학생이 한 명 아니면 두명 이었다. 영재학교로 알려진 강원 횡성 민족사관고도 ‘폭력학교’로 분류되는 ‘사건’도 있었다. 468명의 전교생 중 설문에 단 두명이 응해 이들이 “민사고에도 일진이 있다”고 했는데, 이걸 ‘민사고생들의 일진인식비율은 100%’라고 교육부는 엄청난 비밀 밝혀낸 양 공개했다. 이런 엉터리 조사에 25억원을 썼다. 전문가들 설명을 빌리자면, ‘통계로서의 가치 조차 없는’조사를 한 것도 모자라 조사결과까지 몽땅 인터넷에 올렸다. 한 나라의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부처에서 행한 일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임실의 기적’ 파문이 학습효과가 됐을법도 했으나, 어설프고 의욕만 앞서는 전수조사(평가)의 한계와 부실은 3년만에 고스란히 재연됐을 뿐이다.

더 가관인 것은 조사 결과를 대하는 교육부의 인식이다. “실태조사는 통계가 아니기 때문에 통계로서의 가치나 객관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해괴한 논리를 들이댄다. 설문 응답율이 25% 밖에 안돼 통계적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지만, 그렇다면 굳이 전수조사를 서둘러, 그것도 방학 중에 할 필요가 있었나. 가치 없는 자료를 공개한 건 또 왜 인가. 무의미한 통계 자료 하나를 불쑥 던진 것은 정부가 학교폭력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방증 밖에 안 된다.

교육 현안은 공개해야 효과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공개 지상주의의 폐해는 훨씬 크다고 본다. 통계로서 유의미하지 않은 자료라고 판단했다면 더더욱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조사폭력’이라는 신조어가 두렵지 않나.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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