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약점 중 하나가 성장 과정에서 정신적 스승인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멘토가 있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사법부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미국 정치인은 말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법원이, 선출된 조직인 의회가 통과시킨 법(건강보험개혁법)을 뒤집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한 말인데 한국에서라면 삼권분립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탄핵 절차가 진행됐을 것이다.
민주당 소속인 이 정치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혼자 똑똑해 칭찬만 듣고 자라다 보니 멘토를 만나지 못한 것 같다고 그의 성장기를 되짚었다. 그래서 여론의 비판을 받으면 자신을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 다시 강하게 반격함으로써 타협의 여지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순례자처럼 정치적 멘토 찾기 행보를 거듭하며 자신의 약점을 상쇄하려 했다. 특히 중대 현안과 마주할 때면 전직 대통령을 멘토로 삼았다. 임기 초반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처럼 경쟁자들을 각료로 잡아두었고,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공항을 헤쳐 나온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배우려 했다. 낮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재선의 열쇠를 쥔 중산층을 잡기 위해서는 공정사회를 강조하며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각각 동원했다. 최근 공개한 17분짜리 대선용 비디오에서는 대중적 인기가 높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네차례나 등장시켜 그가 오바마 정부의 보증자임을 알리려 했다. 이쯤 되면 시공과 정파를 오가며 멘토를 동원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를 멘토 정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멘토 정치는 국민에게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며 정치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이 전임자를 찾고 전임자가 현직 대통령의 멘토가 되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이자 자산이다. 생존한 전직과 현직 대통령을 묶어 대통령 클럽으로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쿠바 사태로 고민하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후임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의 멘토가 돼 '대통령의 최고 수석보좌관'으로 칭해졌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게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생각은 물론 백악관 관리의 노하우를 물었고 닉슨 전 대통령은 숨지기 직전 못다한 얘기를 편지로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멘토 정치를 한국에서 목격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오히려 사법처리까지 가지 않은 전직 대통령이 거의 없을 만큼, 현직 대통령은 전임자를 비리나 의혹으로 옭아매는 게 한국 정치의 역사다. 그 결과, 전직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전직 정부 수반에게 발급하는 A1 비자를 신청하면, 미국 정부가 전과자를 예우할 수 없다며 거부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가 어떤 멘토 역할을 했는지 알지 못하지만, 국무회의가 끝나면 긴 시간 대통령과 따로 독대했다고 한다. 최장수 각료인 그의 역할이 알려진 정도에 머물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최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정권 지지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하자 국민이 통치자를 걱정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이 4년 넘게 멘토 역할을 한 이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도 30%를 밑돌고 있다. 이제 국민은 또다시 정권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멘토까지 비리에 휩싸이고 대통령의 보호막들이 하나 둘 벗겨나가면서 정권 말을 기다리는 의혹들을 어떻게 풀어갈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면 범죄가 아니라 사람이 수사를 당하는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오바마식 멘토 정치 따라 하기는 이미 늦은 것일까.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