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국린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논문의 은인’이라고 추천한 방윤규 전남대 물리학과 교수가 이번엔 ‘강의 종결자’ 이공주복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를 소개한다.
한때 내 수업은 수학으로 시작해 수학으로 끝났다. 개념 설명은 수학 공식이 대신했다. 내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학생들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면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일부는 이해하지 못했고, 흥미를 잃었다. 뒤늦게 깨닫고 지금은 ‘눈높이 수업’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 계기를 제공한 사람이 이공주복(54)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다. 1992년 이화여대에 부임한 이 교수는 벌써 여러 차례 강의 우수 교수에 꼽혔다.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물리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학생들이 평가한 강의 우수 교수에 선정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비결은 개념 이해. 이 교수는 딱딱한 수학 공식 대신 동영상, 사진, 그림 등으로 개념을 설명한다. 물리 공식을 외우는 게 아니라 개념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속도의 법칙(f=ma)을 가르칠 때면 가속도의 크기(a)는 질량(m)에 반비례하고 힘(f)에 비례한다고 학생들에게 몇 번이고 설명한다고 들었다. 개념을 모른 채 공식을 외우기만 해서는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간접적이지만 이 교수는 중고생에게도 물리학을 가르친다. 그가 낸 세 권짜리 학습만화책을 통해서다.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선정한 ‘청소년이 읽어야 할 좋은 책 35종’에도 이름을 올렸다.
책은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 같은 대학 교수와 함께 둘이 책을 내기로 했는데 집필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다른 교수가 포기 선언을 했다. 이 교수도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신분’ 탓이었다. 책을 쓰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 교수는 부교수였다. 정교수가 되려면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삽화까지 그리며 책을 쓰느라 도통 연구할 짬이 나지 않았다. 마침 교수 평가가 강화되던 시기인 데다 이 교수의 연구 분야가 논문 한 편을 제출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론물리여서 고민이 더 컸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학교에서 물리 개념을 잘못 배워온 큰 애를 보고 고민을 털어냈단다. 책은 중고생의 눈높이에 맞춰 일상 생활에서 물리학 개념을 쉽게 풀어냈다. 내가 읽어도 재미있다. 가령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을 빌려와 온도 차이에 따른 소리의 굴절을 설명하는 식이다. 밤에는 지표의 온도가 상공보다 낮다. 공기의 밀도가 지표 부근이 높기 때문에 소리가 지표를 향해 굴절하게 된다. 그러니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이 교수는 현재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면서 학생들의 사고 방식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그렇지만 교수법은 제자리다. 익숙해서든, 편해서든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강의를 고수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학생이 변하면 선생도 변해야 한다”고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늦었지만 나도 그 대열에 참여하려 노력 중이다.
정리=변태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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