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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베테랑급 파파라치 장비부터 '007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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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베테랑급 파파라치 장비부터 '007급'

입력
2012.04.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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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금 전문신고자 일명 파파라치. 정부 발표로는 포상금을 가장 많이 받아간 파파라치가 1년에 고작 795만원 수익을 올렸다는데 왜 전문학원에 지망생들이 몰릴 만큼 인기가 뜨거운 걸까, 이들은 포상금을 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파파라치를 등치는 학원 기승'(한국일보 4월 17일자 18면) 취재 이후 파파라치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친 김에 파파라치 동행취재를 결심했다. 25일 서울 근교 한 재래시장 내 곡물가게. 농산물 원산지를 속여 파는 곳으로 의심돼 경력 12년차 베테랑 파파라치 김성모(49ㆍ가명)씨를 따라 나섰다. 그는 회원 4,000여명인 파파라치 네이버 카페 '헌터클럽'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한쪽에서 참깨를 볶아 기름을 짜고, 다른 쪽에서는 콩, 팥 등 곡물을 팔고 있었다. 식자재 납품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씨는 자루에 담긴 깨를 몇 알 입에 털어 넣으면서 "국산, 중국산 병당 가격이 얼마냐. 한 100병 살 테니 싸게 해달라"고 흥정을 시작했다. 옥신각신 하던 중 "(국산과 중국산을) 섞는 거 아니냐"고 김씨가 슬쩍 찌르자 주인이 발끈했다. 주인은 김씨의 옷 소매를 잡아 끌어 가게 뒤편 창고로 데려 갔다.

"보세요. 우리는 국산만 취급한다고요." 창고 안에는 곡물들이 자루에 담겨 있었다. 김씨는 참깨를 슬쩍 쳐다본 후 검은콩을 몇 알 들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국산은 무슨. 원산지 표시도 안 돼 있고, 껍질에서 광이 나는데다, 이 눈을 봐요. 이건 중국산이야 중국산." 참기름으로 혼을 빼놓고 검은콩을 들고 나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전법이었다.

가게를 벗어나자 김씨는 옆 가게에서 진짜 국산 검은콩을 들고 와 눈으로 국산과 중국산을 가리는 방법을 기자에게 설명했지만, 도통 구별하기 어려웠다. 김씨는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죠, 그게 다 돈인데"라고 말했다. 원산지 표시 위반 포상금은 5만~200만원인데, 조금 전에 들렀던 가게는 10만원 짜리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증거를 해당 관청에 제출하려면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김씨는 장비 세 대를 동원해 이미 다 찍었단다. 주머니에서 꺼낸 화투짝만한 모니터에 조금 전 상황이 고스란히 녹화돼 있었다. "도대체 뭘로 찍은 거냐"고 묻자, 김씨는 "한 번 찾아보라"며 웃는다.

'원산지 표시 위반' 신고 작업은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기자가 원한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영화를 방불케 할 긴장감 넘치는 그런 현장을 기대했었다. 김씨에게 "전날 있었던 유사휘발유 판매현장에 왜 데리고 가지 않았냐"고 항의하자, 김씨는 "물 뜨러 갈 때(유사 휘발유 판매 현장 조사를 그들은 그렇게 불렀다) 경력 1년차 미만은 심부름꾼으로도 안 데리고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유사 휘발유 작업은 1단계(운전, 심부름 담당) 2단계(장비관리, 정보수집) 3단계(현장 촬영) 등 각 단계별로 1~3명씩 보통 6명이 한 조가 된다. 포상금은 단계 구분 없이 똑같이 나눠 갖는다.

유사 휘발유 작업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유사 휘발유 판매상을 발견하면 우선 안면 트기에 들어간다. 일주일에 한두 번 차에 기름을 넣으면서 음료수도 나눠 먹으며 친밀한 관계를 맺기까지 최소 두세 달은 걸린다. 최종 목표는 포상금 5만원짜리 판매상이 아니다. 300만~5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제조 공장이다. 때문에 판매상과 식사, 술자리 등을 하면서 공장을 알아내야 한다. 친해져도 대부분 공장까지는 알려주지 않아 허탕을 치는 일이 다반사다. 제조 공장을 알아냈다면 이제 치밀함이 요구된다. 현장에서 촬영장비가 발각되면 폭력배들에게 폭행을 당할 위험이 크다.

다른 직업도 많은데 왜 하필 위험한 파파라치냐고 물었더니 김씨는 뜸도 들이지 않고 "돈 때문"이라고 답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박봉에 시달리는 6년간의 지방 공무원 생활을 접고 속셈학원을 열었다. 수강생이 적지 않았지만 살림은 항상 빠듯했다. 그러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2001년 생긴 카파라치 소식을 접하고 가능성을 봤단다. 신호위반, 고속도로 갓길 운행, 중앙선 침범 등 난무하던 불법행위를 찍기만 하면 돈이었다. 그렇게 2년간 6,000만원을 벌었다. 당시 6,000만원이면 서울 송파구의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는 큰 돈이었다.

지금도 수입은 짭짤하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일반 직장인 연봉의 서너 배, 억대 연봉"이다. 지난달 총리실은 1인당 연간 최고 795만원이라고 발표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니 "가짜 양주 신고 포상금만 1,000만~2,000만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렇다고 모든 파파라치가 수억원씩 포상금을 챙기는 건 아니다. 국내 전업 파파라치 300여명, 부업으로 하는 투잡 파파라치 1,000여명 가운데 억대 연봉자는 극히 일부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찌 보면 타인의 잘못을 고자질해 돈을 버는, 남에게 자랑스럽게 드러내기 망설여지는 직업일 수도 있지만 김씨는 파파라치를 "공무원들의 눈"이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위법행위 단속은 공무원의 임무지만, 마구잡이로 현장 조사에 나선다면 영업방해 등 선의의 피해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파파라치가 공무원이 단속할 근거를 완벽하게 대신 정리해줘서 행정력 낭비를 줄인다는 것이다.

김씨는 파파라치 양성화를 주장했다. 사업자로 등록해 떳떳하게 벌어 세금도 내고 좀더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씨는 "어려운 사람 등치는 성인오락실, 국민들을 속이는 농ㆍ수산물 원산지 표시 위반 등 사회 저변에 깔린 문제들 우리 아니면 누가 고발합니까"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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