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부터 1년 간 학교 앞 49.5㎡짜리 아파트에서 동아리 선배와 함께 자취생활을 했던 이화여대 3학년 박모(20)씨는 올해 초 집을 구하려다 포기했다. 박씨는 "보증금 1,000만원은 선배가 냈고, 월세 100만원을 절반씩 나눠 내왔는데 주변 방값을 알아보니 현재 사는 아파트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19.8㎡)의 원룸이 보증금 수백만원에 월세 60만원 수준이었다"며 "방값이 비싸 새 집 찾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방값과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학교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그는 "월세가 많이 오른 걸 안 뒤에는 부모님께 방값으로 돈을 더 달라는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 중인 한국외국어대 4학년 윤모(26)씨도 2010년 8월부터 2년 계약으로 살고 있는 회기역 인근 원룸 전세의 재계약이 다가오면서 걱정이 앞선다. 지금 월 45만원을 내고 있지만 주변 시세를 알아 보니 집 주인이 최소 월 5만원 이상 방세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는 "취업이 안 되는 바람에 한 학기를 더 다니고 있어 부모님께 죄송스런 마음인데 방값까지 올랐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물가 여파로 대학 주변 방값이 크게 올라 학생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현상이긴 하지만 올 들어 전ㆍ월세 가릴 것 없이 대폭 상승하면서 자취 대학생들의 목을 죄는 상황이다.
대학이 몰려 있는 서울 신촌 지역 부동산 확인 결과 올해 들어 자취방 월세와 하숙비가 지난해에 비해 월 평균 5만원, 연간 60만~100만원 이상 올랐다. 서강대 인근 R부동산 관계자는 27일 "신촌엔 대학생 말고 직장인도 많이 살고 있어 공급보다 수요가 많다"며 "해마다 방 값이 오를 수 밖에 없으니 학생들은 그만큼 싼 방을 찾기가 더 어려워 진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창천동 Y부동산 관계자는 "건물 주인들이 내부를 수리하거나 리모델링을 한 뒤 월세를 조금씩 올려 60만~70만원을 받는 방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립대ㆍ경희대ㆍ한국외대가 있는 회기역 주변도 마찬가지다. 한국외대 인근 G부동산 관계자는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집 주인들이 6~7평짜리 방을 4~5평으로 줄이면서 방을 늘리고 월세는 그대로 50만원을 받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처럼 방값 상승 등 주거조건이 갈수록 악화하다 보니 각 대학 학생회가 뭉쳐 대응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서강대 연세대 홍익대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주거네트워크'를 구성,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이들은 신촌 홍대 주변 자취방과 하숙집 주거정보를 조사해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든 뒤 공유하며 전ㆍ월세 가격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서울시에 대학생 주거 관련 정책을 제안하는 워크숍도 개최할 예정이다.
고명우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매년 치솟는 집값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하숙비 담합 등 부당사례를 찾아내거나 대학생 전용 계약서 도입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서울시에 건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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