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대학생 황모(당시 22세)씨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마트 일산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다 질식사한 사고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하지만 황씨를 포함, 함께 작업하던 노동자들까지 모두 4명이 숨진 대형 산업재해였음에도 정작 이마트는 아무런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냉동기 보수작업은 이마트의 한 하청업체가 황씨가 근무하던 업체에 재하청을 준 것으로 원청인 이마트는 법적인 책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고에 대한 여론이 일자 고용노동부가 이마트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 이 사고가 아닌 다른 사소한 안전 규칙 위반을 들어 탄현지점에 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 게 이마트에 가한 처벌의 전부다.
2008년 1월 이천의 한 냉동창고에서 화재가 발생, 무려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안전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으로 실형을 선고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시공사 대표가 2,000만원의 벌금을 받았고 현장소장 등 관리자들이 집행유예를 받았을 뿐이다.
연평균 2,5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이유가 딴 데 있는 게 아니다.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사망해도 사업주가 받는 처벌은 너무 가볍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안전 의무 소홀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등 관리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돼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대법원의 사법연감에 따르면 산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제1심 기준) 받은 사람은 2006년 3명, 2007ㆍ2008년 각 1명, 2009년 3명, 2010년 2명으로 5년 동안 10명에 불과하다. 연간 5,000~7,000명이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되는 것을 감안하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실질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다. 대부분은 소액의 벌금만 내고 만다.
이러니 사업주들은 굳이 돈을 들여 안전 설비를 마련할 이유가 없다. 고용부의 산업안전감독 결과에 따르면 2010년의 경우 전체 감독대상업체 1,117곳 중 99.3%인 1,110곳이 산안법을 위반했다. 거의 모든 사업장이 안전관리를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의 산재 사망 및 재해율이 전체 산재의 70~8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원청사업주는 하청 노동자에 대해 안전ㆍ보건에 관한 협의체 구성 및 운영, 작업장의 순회점검 등 최소한의 예방 업무 책임만 있다. 이러니 사고가 발생해도 '산안법 위반을 방지하기 위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 한 경우'에 한해 처벌되고,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ㆍ상죄가 적용되더라도 원청업체의 사업주가 아닌 중간 관리자급이 처벌받는 경우가 상당수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2010년 충남 당진의 철강업체에서 한 청년이 용광로에 빠져 사망한 사건은 단돈 10만원짜리 안전 난간을 설치하지 않아 발생했다"며 "한국의 산재 사망은 대부분 예방 조치만 있으면 막을 수 있는 사고 임에도 실효성 없는 처벌 때문에 산안법 위반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외국은 어떠할까.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이 가장 낮은 영국의 경우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산재 사망 사건에 대해 기업에 살인죄를 적용할 만큼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2008년 한 건설노동자가 웅덩이에 빠져 사망하자 해당 기업에 6억9,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강문대 민변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현행 산안법은 산재 예방 의무만 규정돼 있기 때문에 산재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한계가 있다"며 "산재 발생 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준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우리나라의 산업 현장은 전쟁터나 다름 없는데도 산재 사망을 여전히 '생산을 위한 희생'으로 치부하고 있어 산안법도 굉장히 허술하다"며 "위험을 생산하고 관리하는 자가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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