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패티 김은 수퍼스타였다. 1959년 데뷔해서 62년에 리사이틀 이라는걸 우리나라에서 처음 했고, 디너쇼도 패티 김이 문을 열었다니 위풍당당하게 50년 넘게 가요계를 맨 앞에서 이끈 여걸이다. 하지만 어린시절, 텔레비전에서 보는 그는 뭔가 낯설었었다. 일단 외모와 분위기가 AFKN을 보는 것 같아서 맘편히 좋아하기 힘들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그녀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지 않았고 세종문화회관, 카네기홀 등 뭔가 그 활동무대도 쉽게 접근하기 힘든 높은 곳에 있는것처럼 보였다. 라디오 프로듀서가 되어서도 그녀를 섭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방송국에서 오며가며 몇 번 본적이 있지만 말조차 붙이기 힘들었다. '패티 김'이라는, 설명이 필요없는 도도함과 우아함의 아우라가 주변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스타'라는 단어가 패티 김만큼 잘 어울리는 연예인도 드물것이다.
패티김이 나에게 뚜렷이 각인된 노래는 두곡이다. 먼저 70년대 초에 발표한 '1990년'이다. '1990년, 정아는 스물하나…'로 시작하는 그 노래는 길옥윤과 패티 김의 딸 정아가 스물하나가 되는 해를 가슴 벅차게 상상하며 만든 곡이라고 했다. 늘 화려하고 오페라 가수같이 큰 제스처로 노래를 부르던 패티 김이 길옥윤의 기타 반주 하나로 담백하고 조용조용 불러내는 그 노래를 들으며 저런 노래를 부모로부터 듣는 '정아'라는 아이는 얼마나 좋을까, 이름도 나랑 비슷한데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공주처럼 커갈것만 같은 '정아'를 초등학생이던 나는 몹시 부러워했었다. 이 노래가 얼마나 기억에 남았던지, 실제로 90년이 되던 해, 나는 얼굴도 모르는 패티 김의 딸 '정아'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을 정도였다.
또 한 곡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이별'이다. 나는 이 노래를동명의 영화에서 만났다. 어떻게 그때 그 영화를 내가 봤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초등학생 시절, 남영동 금성극장에서 숨죽여 본 영화 '이별'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프랑스 파리 올로케이션으로 제작된 영화였다. 신상옥 감독이 만든 '이별'은 말하자면 영화 패티 김이었다. 와, 한국영화가 저렇게 세련되게 만들어지는구나, 놀라고 또 놀랐었다. 신성일 김지미도 멋있었지만 무엇보다 신인 오수미는 할리우드에서 막 도착한것처럼 서구적이었다. 세사람의 사랑이 모두 타당하게 아름다웠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흐르던 주제가, '이별'은 완전히 화룡점정이었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그렇게 사랑했던 기억을 잊을수는 없을꺼야'
사십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별'은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짠해진다.
'이별'은 이별노래의 알파요 오메가다.
노래처럼 최근 그녀는 가수로서 우리에게 '이별'을 고했다. 굳이 '은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더 나이들어도 노래하는 모습을 언제나 그랬듯이 선구자로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완벽주의인 그녀의 결심은 분명 의미가 있을것이다. 노래를 위해 몸에 나쁜 음식은 먹지않고 사람도 잘 만나지 않고 고독속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패티 김. 반세기를 압도해온 명성이 얼마나 치열하게 만들어진 것인지 노래로 그녀는 영원히 들려줄것이다.
조휴정ㆍKBS해피FM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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