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주말연속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는 중견배우 김상호와 유준상이 작은아버지와 조카로 나온다. 유준상은 30대 중반의 능력있는 외과의사이자 다정한 신세대 남편 역할이고, 김상호는 배운 사람 티내기를 좋아해 현학적이고 어려운 말을 자주 쓰는 부동산중개업자로 50대를 바라보는 설정이다. 언뜻 보면 삼촌과 조카까지는 아니어도 꽤 나이 차가 있어 보이는 이 두 배우의 화면 밖 실제 나이는 그 반대다.
연예계에서도 동안으로 꼽히는 유준상은 1969년생으로 마흔셋이고, 숱 없는 머리 때문에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는 김상호는 1970년생으로 한 살 아래다. 이런 반전은 드라마 관계자들조차 "정말이냐"고 물을 정도니 시청자들 눈 속임에는 성공한 케이스다. 지난달 종영한 MBC '해를 품은 달'에서도 허염 아역의 임시완은 실제 스물 네 살인데 여진구(어린 왕세자 이훤 역할)와 친구해도 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숙한 외모와 굵은 목소리의 여진구는 사실 1997년생으로 중학교 3학년이다.
드라마 캐스팅의 나이 파괴는 브라운관에서 너무 흔한 풍경이다. 그런데 때때로 배우들의 나이 역전 현상으로 극에 몰입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SBS 주말극 '바보엄마'에서 모녀지간으로 나오는 하희라와 김현주가 대표적인 예다. 극중 자매로 나오다 최근 사실 하희라가 열여섯에 낳은 딸이 김현주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시청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희라가 어떻게 저렇게 큰 딸을 두느냐'고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하희라는 1969년생, 김현주는 1977년생으로 여덟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다 하희라 역시 동안이다 보니 억지설정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여배우들의 경우 중간 나이 역할이 많지 않아 조로(早老) 현상이 두드러진다. 청춘물 아니면 가족물로 소재가 한정적인 국내 드라마 풍토에 30, 40대 여배우들은 노처녀 역할 아니면 큰 아이를 둔 엄마 역할로 훌쩍 점프하게 된다. '넝쿨당'에서 맹하고 눈치없는 김상호의 아내 역할을 맡은 심이영은 뽀글뽀글한 퍼머를 하고 고등학생 아들을 둔 천상 아줌마로 나오는데, 1980년생으로 이제 서른 둘이다. 마흔 살 윤해영은 6월 KBS에서 방송예정인 드라마 '빅'에서 이민정의 엄마로 출연한다. 고교시절 노총각 선생님이었던 안석환을 사랑해서 결혼한 동안 엄마라는 설정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열 살 아래인 이민정의 엄마 역할을 하기에는 억울할 것 같다. 최근 몇 년 간 엄마 역할로 브라운관을 점령한 김미경 역시 MBC '빛과 그림자'의 이필모 엄마 역할이 어색하지 않으나, 두 사람의 나이차는 고작 열한 살이다. 종영한 MBC '천번의 입맞춤'에서 이미영(52)은 아예 노역으로 넘어가 서영희(34)의 먼 친척 할머니로 출연하기도 했다.
드라마 관계자들은 여배우 조로 현상은 극의 리얼리티보다는 젊고 예쁜 여배우를 선호하는 경향 등으로 인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드라마 PD는 "특히 젊은층에게 어필하는 미니시리즈에서는 아예 20대 초반을 선호하기 때문에 30대 중반 여배우 중에서는 어린 남자배우들과 어울리면서도 연기력을 인정받는 하지원 등 몇몇을 제외하고는 운신의 폭이 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넝쿨당'의 김남주(41)는 그런 의미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다. '넝쿨당' 관계자는 "김남주는 최근작들이 인기를 끌면서 그 나이와 캐릭터에 맞춘 작품들을 고를 수 있게 된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말했다. 스타로 불리는 30대 중후반이나 40대 여배우들도 구미에 맞는 역할 고르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 아예 드라마 출연을 포기하고 CF만 간간히 찍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도 한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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