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가을. 서울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세계 주요국들은 전운에 휩싸였다. 이른바 환율 전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경기침체에 빠지자 각국은 일제히 경기부양모드로 돌입했다. 금리를 낮추고 재정지출을 늘렸지만 역부족. 각국은 마지막으로 환율카드를 뽑았다. 통화가치를 절하시켜 수출을 늘리려는 것이었다.
시작은 중국이었다. 위안화 절상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고정환율제로 돌아간 것. 미국은 발끈했다. 그렇지 않아도 매년 천문학적 대중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미국은 중국의 고정환율복귀에 대해 ‘환율조작국 지정’을 위협했고, 실제 하원은 무역보복법안을 통과시켰다.
전선에는 브라질도 가세했다. 투기자본의 유입으로 브라질 헤알화는 걷잡을 수 없이 절상되던 상황이었다. 브라질은 자본유입을 막기 위해 자본거래세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중국을 비난한 미국이었지만, 인위적으로 달러가치를 낮게 유지한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로금리도 모자라 대대적 달러살포(양적완화)에까지 나서면서 달러가치를 약세로 끌고 갔는데, 애꿎게도 불똥은 일본으로 튀었다. 장기불황탈출을 위해선 엔화약세도 모자랄 판에, 미국의 달러약세정책 때문에 엔화는 거꾸로 절상됐고 실물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마침내 일본도 엔화절상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시장개입을 단행, 환율전쟁에 발을 담그게 됐다.
환율은 한쪽이 절하되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절상된다. 철저히 제로섬 게임이다. 하지만 당시엔 모든 나라들이 경기방어를 위해 절하만을 원했다. 한 나라가 절하시키면 다른 나라는 더 강력한 수단으로 절하를 유도하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LG경제연구원 김병주 연구위원은 당시 상황에 대해 “각국 경제가 심각하게 나빠진 상태에서 일종의 아노미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2008년은 환율전쟁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전개됐던 시기다. 하지만 환율전쟁은 그 이전에도 있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모든 나라가 FTA를 통해 평화로운 자유무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환율이 사실상 ‘무역무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환율전쟁은 곧 무역전쟁이다.
G20 서울정상회의 이후 환율분쟁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크고 작은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환율주권을 강조하며 미국에 함께 맞섰던 중국과 브라질도 지난해엔 적대관계로 돌아섰는데, 브라질이 “중국의 저가제품수출로 브라질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면서 국제무역기구(WTO)에 위안화 저평가 문제를 제소한 것. 권혁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그 동안 선진국 시장을 공략했던 중국이 수출다변화로 신흥국 시장을 잠식하면서 환율갈등은 신흥시장 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율전쟁의 중심엔 항상 중국이 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무역흑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 정부가 인위적으로 절상을 막다 보니 항상 ‘환율조작국’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미 정부가 4월과 10월 두 차례 의회에 환율보고서를 제출할 때면 늘 이 문제가 불거지는데, 미국은 “위안화 절상을 하지 않으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이에 중국은 “미국이 수출을 못하는 것은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위안화 때문이 아니다. 내정간섭하지 말라”고 반박하는 식이다.
최근 들어 각국간 환율전쟁은 다소 누그러지는 분위기다. 지난 14일 중국이 위안화 환율변동폭을 예상보다 큰 ±1.0%로 늘리면서, 시장압력을 수용하는 제스처를 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환율을 통한 무역분쟁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형주 연구위원은 “올해는 중국이 새 지도부로 전환되고 미국도 대선을 앞두고 자국산업보호를 위한 공약을 앞다퉈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 그 만큼 미ㆍ중간 환율분쟁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FTA로 대표되는 무역평화 시대에도, 환율을 통한 무역전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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