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부부가 결혼한다고 하여 함께 가전대리점에 들렀다. 고를 것은 냉장고였건만, 호기심에 나는 에어컨이며 텔레비전이며 세탁기며 회사별로 구비되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가전제품들을 손으로 쓸어보고 버튼마다 눌러보기 바빴다.
내가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그리하여 이륙의 순간을 맛봤을 때, 유레카를 외치듯 라이트 형제는 천재라며 호들갑을 떨었었지. 실은 냉장고가 플러그 뽑힌 흰 속내인 채로 일렬종대 한 것을 볼 때도 그 마음이곤 한다. 엄마는 먹는 것도 해 먹이는 것도 죄다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냉장고 없이 식당이나 요리사는 고사하고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인구가 늘었겠는가.
냉장고가 발명된 것이 20세기이고 그로부터 1세기를 더 살아낸 지금, 무지막지로 번식할 박테리아로부터 벗어났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우리들이 더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물고기가 먹고 싶으면 물에 뛰어들고 멧돼지가 먹고 싶으면 들로 뛰어들고 풀뿌리가 먹고 싶으면 산으로 뛰어들던 자급자족의 삶만큼 신선도가 뛰어난 냉장고는 앞으로도 등장할 턱이 없을 테니 말이다.
맨손으로 살림살이를 시작하는 후배 부부가 장롱은 없어도 냉장고 없이는 못 산다며 좁은 집에 욕심껏 양문형 냉장고를 고르는데 한숨이 피식 흘러나왔다. 이런다고 미국서 오는 고기가 한우 되랴. 국민들 먹을거리 걱정은 안중에도 없이 미국 눈치 보기 바쁜 정부 아래 우리들, 좀 불쌍하지 않는가.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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