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ㆍ반도체 전문가, 콘텐츠 기획 전문가, 미국 변호사.'
동갑내기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세 남자가 하던 일 다 버리고 서울 서교동 홍익대 근처 작은 사무실에 뭉쳤다. 그것도 불혹의 나이에. 소셜 음악업체 보나셀의 이시윤 대표, 이동규 전략기획실 이사, 김정호 경영기획실장이다. 직함도 사이 좋게 하나씩 나눠가졌다.
각 분야에서 이름 날리던 이들을 한 곳에 둥지를 틀게 한 건 '초등학교 친구'라는 아련한 기억만이 아니었다. 음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 컸다. 출발은 "아이돌 스타 일색의 K팝 열풍이 과연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국내 대중음악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긴 했지만 돌아선 뒤에도 오지랖 넓은 이들의 걱정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각자 일로 소원하던 세 친구가 의기투합한 이유이기도 했다.
1년여 연구 끝에 '보나스테이지'라는 다소 생소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일종의 소셜 펀딩 플랫폼으로, 인디 음악 공연을 후원하는 시스템이다. 공연 무대를 갖고 싶어도 몇 십 만원이 없어 무대에 서지 못하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공연 계획안을 온라인으로 보나스테이지에 보낸다. 이를 살펴본 음악 팬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공연에 '투자'하는 시스템이다. 공연장 임대료 등 공연 비용이 확보되면 후원 팬 등 대중 앞에서 공연을 갖게 하는 방식이다. 27일 오후 7시 홍익대 V홀에서 보나스테이지 출범 자축을 겸해 열리는 '스테이지의 제왕'이 신고식이다.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출신인 이시윤 대표는 "한류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대중음악이 '앞으로도 인기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를 논하면서 춤을 내세운 천편일률적인 K팝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했다"고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홍대 인근 공연장 주변을 떠도는 가난한 뮤지션들을 떠올렸다"고도 했다.
인디 뮤지션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대중음악이 풍성해 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각종 문화 콘텐츠 기획에 잔뼈가 굵은 이동규 이사는 "홍대 주변 인디 뮤지션의 규모는 300~500팀으로 추정된다"며 "K팝이 지금의 인기를 계속 끌고 갈 힘이 여기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판단은 거대 기획ㆍ음반제작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내 음악시장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이기도 한 김정호 실장은 "일사불란한 군무에 반했던 미국인들도 이젠 K팝에 실증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다양한 K팝을 보여주기 힘든 대형 기획사의 한계"라고 진단했다. 이동규 이사는 "기획사는 대개 음악가를 발굴한 뒤 훈련을 통해서 상품성을 극대화시킨다"며 "그러나 이런 시스템에서 다양한 팬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이 나오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소셜 펀딩 플랫폼의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김 실장은 "지난달 미국 퀵스타터라는 소셜 펀딩 플랫폼이 PC게임 개발자 후원을 위한 시장을 열었는데, 24시간 만에 100만달러가 모이고 최종적으로 330만달러(약 35억원)가 걷혔다"며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갈증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음악 실험'에 뛰어든 이들은 보나스테이지의 안착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제작자 중심의 획일적인 대중음악에 회의적인 소비자들이 늘고 있고,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를 긴밀히 연결하는 인프라(SNS)가 확산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잡 쓰리잡을 뛰어가며 음악을 하는 인디 뮤지션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일입니다. 그 정도 열정의 뮤지션들이 날개를 달면 세계를 무대로 날지 않겠어요?"
글·사진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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