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가 활동했던 기원전 300년대는 전란(戰亂)의 시대였다. 한ㆍ위ㆍ조ㆍ제ㆍ진ㆍ연ㆍ초 등 7개의 제후국이 중원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날 새고 눈 뜨면 피 튀기게 싸워야 했던 그때, 제후들에겐 입만 열면 왕도(王道)니 인의(仁義)니 ‘입바른 말’만 주워섬기는 맹자가 비위에 맞을 리 없었다. 그래서 경전인 에도 첫 장인 양혜왕장(梁惠王章)부터 틈만 나면 야유를 던지는 왕과 이에 대한 맹자의 거침없는 반격이 불꽃을 튀긴다.
▦양혜왕이 기러기 날고 사슴이 노니는 자신의 연못에서 맹자가 풍경을 즐기는 걸 보고 슬쩍 비아냥거렸다. “아이고, 현자께서도 이런 걸 다 즐기십니까(賢者亦樂此乎)?” 그러자 맹자 왈(曰), “현자가 돼야 비로소 즐길 줄 아는 것이니, 어질지 못하면 이런 게 있어도 즐기지 못하지요(賢者而後樂此 不賢者雖有此不樂也)”라고 받아친다. 한마디로 ‘이 호수는 네 것이지만, 너 정도가 어찌 풍광을 즐길 만한 정신적 경지를 알겠느냐’는 회심의 반격이었던 셈이다.
▦맹자를 맞는 양혜왕의 첫인사에도 야유가 담겼다. 의역하면, “선생께서 이렇게 오셨으니, 뜬구름 잡는 소리는 그만하고 나라에 현실적으로 이로운 얘기나 해 보시오(叟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라고 했다. 그러자 맹자는 “어찌 이로운 것만 따지십니까(何必曰利)”라고 일갈한 뒤, “왕부터 그런 식으로 이해를 앞세우면 대부에서 사서인(士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이해 다툼에 빠져 나라를 망칠 것”이라며 눈앞의 이해를 넘어 인의를 추구하라고 훈계한다.
▦왕도니 인의니 하는 맹자의 가르침이란 게 결국 통치 철학일 터이다. 섣부른 이상론에 갇혀 참담하게 실패한 전 정권에 넌더리가 난 유권자들은 단순히 더 잘 살게 해주겠다는 MB정권의 현실론을 택했던 셈이다. 그런데 요즘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권력실세들의 비리 시리즈는 통치 철학이 박약한 정권이 얼마나 추하게 곪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철학 없는 자들에게 권력을 주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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