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인 이항복의 문집, 퇴계 이황의 서한을 묶은 서적 등 문화재 수 천 점을 해외로 밀반출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국제 택배와 화물 등으로 위장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문화재 3,586점을 일본 중국 등에 밀반출한 유모(52)씨 등 22명을 문화재보호법위반(무허가 일반동산문화재 반출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26일 밝혔다. 같은 혐의로 중국인 여행객 장모(57)씨 등 2명에 대해선 기소중지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2009년 4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문화재매매 인터넷 사이트에서 구입한 조선시대 문인 하홍도의 ‘겸재선생문집(謙齋先生文集ㆍ1666)’ 등 일반 동산문화재 3,486점을 129회에 걸쳐 국제특송우편(EMS)으로 중국에 빼돌렸다. 일반 동산문화재는 국보 보물급의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당대 문화현상, 예술성 등을 엿볼 수 있어 역사적 가치를 평가 받은 문화재다. 이번에 유출된 문화재는 점 당 감정가가 50만~300만원으로, 전체 규모는 수 억원에 이른다.
또 동대문에서 문화재 매매업을 하는 이모(64)씨 등 20명은 2005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목공예ㆍ토기 등 문화재 100점을 반닫이 안에 넣어 ‘가구류’로 표기해 수출하는 방법으로 중국 일본에 밀반출했다.
유출된 문화재 중에는 조선 정조가 뽑은 중국 유학자 주희의 서간 100편을 규장각이 활자본과 목판본으로 간행해 문장이 가장 정교하고 정확하다고 평가 받는 ‘어정주서백선(御定朱書百選ㆍ1794)’, 조선 선조 때 문신 이항복의 문집인 ‘노사령언(魯史零言ㆍ1673)’, 퇴계 이황의 서한 가운데 수양과 성찰에 도움되는 글 22개를 뽑아 엮은 ‘퇴도선생자성록(退陶先生自省錄ㆍ1585)’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도 포함돼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인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는 X선을 투과한 색상 차이(현대서적은 짙은 밤색, 고서적은 주황색)로 서적류를 검사하지만 유씨는 고서적 2, 3책을 신문지로 포장해 일반 서적 사이에 끼워 넣은 뒤 소포용 박스에 담는 식으로 검색대를 통과했다.
특히 항만 화물의 경우 관세사가 이 물품을 직접 육안으로 확인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서면 검사만 이뤄져 문화재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경찰은 피해 문화재 3,000여점 중 검거 당시 이들이 보관 중인 문화재 74점만 회수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밀반출된 문화재는 이미 일본 중국 현지의 다른 구매자들에게 유통됐기 때문에 회수할 방법이 없다”며 “관계 당국이 더욱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