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정부 자체가 문제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1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이 간명한 두 문장이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때까지 전세계를 호령하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 강령 중 하나다.
레이건 대통령을 필두로 한 신자유주의 진영은 "정부는 무능하고 부패했으며, 유일한 치유책은 시장"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정부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려 했다. 미국에서는 정부의 핵심 기능마저 시장으로 대체했다. 이런 시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절정에 달해 교도소, 전력망 같은 사회기반시설 민영화는 물론 국경 경비와 이라크전 같은 국방 및 재해 예방ㆍ복구 기능까지 민영화했다.
우리나라 역시 외환 위기의 쓴맛을 봐야 했던 이유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우리나라 제도 탓이라 진단하고, 당시 '첨단'이던 신자유주의 이념을 적극 수용했다. 그 결과 금융기관과 공기업들이 민영화하고, 도로 지하철 등 기반시설 건설에는 민자유치 제도가 도입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민영화가 정부와 공무원들을 견제하고 대체하기 위해 도입하려는 것인데도 정작 견제 대상인 고위 공무원들이 반대는커녕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진다. 민영화나 민자 유치는 고위 공무원들에게 짧은 임기 내에 가시적 업적을 만들어 더 높은 자리로 옮길 수 있는 발판이 될 뿐만 아니라 퇴임 후 자신이 재취업할 좋은 직장이 됐다. 이처럼 대부분의 민영화 정책은 시작 단계부터 정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의 유착 장소'로 변질됐다.
그래도 민영화를 통해 효율성이 높아져 세금 낭비를 줄일 수 있다면 공공성이나 책임성 등이 다소 후퇴하더라도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목적이 도입 단 계부터 불투명해지면서 민영화 이후 책임성은 물론 효율성까지 후퇴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가장 극적인 예는 2005년 8월 미국 남부를 휩쓸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비극이다. 당시 뉴올리언스시의 80% 이상이 물에 잠겼고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하지만 사태 수습을 지휘한 연방긴급사태관리청(FEMA)이 이재민 탈출을 도울 버스를 재해지역에 보낸 것은 허리케인이 상륙한 지 5일이 지난 후였다. 2001년부터 시작된 FEMA 민영화는 결국 예산ㆍ인력 삭감의 다른 이름이었고, 뉴올리언스가 수몰 위험이 높다는 수차례의 경고는 경비절감을 이유로 무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솔했던 민영화의 역습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 감사결과2001~09년 전국 29개 민간투자사업에 지급된 정부의 적자 보전금은 2조2,000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2040년까지 민간자본의 배를 채우기 위해 쏟아 부어야 할 세금이 무려 18조8,000억원이다. 추진 과정을 살펴보니 의혹투성이다. 시작 단계부터 수요 예측을 부풀려 민자유치를 성사시킨 후 참여한 민간자본에게는 연간 10%가 넘는 이자를 지급하는 것도 모자라 최소운영수입보장(MRG)까지 남발했다. 뒤늦게 책임 소재를 찾고 있지만 당시 책임자들은 대부분 이미 자리를 떠났고, 당시 계약사항은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있다.
최근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시도에 민심이 악화한 마당에 국토해양부가 '수서발 KTX 운송사업자'를 선발하겠다는 정부 제안서 발표를 강행했다. 이 자리에서 한 국토부 공무원은 악화한 여론을 의식한 듯 "수서발 KTX 운송자 선정은 운영권만 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 지하철 9호선과는 다르며 민영화로 볼 수 없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 발언을 한 해당 공무원은 9호선 문제가 돌출하기 전인 올 1월 "민간이 운영하는 지하철 9호선처럼 (수서발 KTX를 민간이 운영하면) 운임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더 새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던 장본인이다. 역시 공무원들은 민영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정영오 경제부 차장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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