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노동자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한 사람 그리고 그 가족들의 밥줄을 끊고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것이기에,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절차도 엄정해야 한다. 장기 파업 중인 방송사들에서 최근 잇따르고 있는 해고는 과연 정당한 조치일까.
최경영 KBS 기자가 지난 20일 해임됐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지난달 6일 파업에 들어간 이후 첫 해고 결정이다. 최 기자가 김인규 사장에게 '이명박 강아지 나가라' '김인규 너 나가 임마' 등 욕설 문자를 보내고 집회에서 "씨벌놈아"를 수차례 외치는 등 상습적 언어 폭력을 저질러 사규상 성실ㆍ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게 사유였다.
최 기자 해고는 당초 징계 대상에 올랐던 노조 집행부와 파업뉴스를 만드는 리셋뉴스팀에 앞서 긴급하게 처리됐는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새노조는 26일 오후 여의도 KBS 주변에 50여개의 천막을 설치하고 'OCCUPY KBS'로 명명한 노숙 투쟁에 들어갔다. 앞서 KBS 직능단체, 보도본부의 고위간부와 특파원들까지 해임처분 취소를 촉구하고 나섰고, 24일엔 드라마CP 등 팀장급 간부 22명이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했다. 해고 조치가 노사간 대화 단절 속에 50일을 넘기며 힘이 빠져가던 파업 사태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다.
4ㆍ11 총선 이후 파업 언론사들은 사장 측근들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거나 징계를 남발하는 등 강경모드로 가고 있다. 문제가 된 최 기자의 욕설 문자 역시 13일 청경을 동원한 사측의 노조 천막 강제 철거와 이 과정에서 일어난 물리적 충돌에 격앙해 보낸 것이었다.
과도한 욕설을 정당화하긴 어렵다. 그러나 모욕죄로 고소를 해놓고 해고까지 밀어붙인 것은 지나쳤다. 해고 사유가 정말 욕설만인가도 의문이다. KBS 새노조의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인 최 기자가 5공 시절 김 사장의 낯뜨거운 친정권 리포트들을 모은 '김인규 걸작선'제작을 주도하는 등 김 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표적 징계를 당했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번 해고 조치는 폭행이나 금품수수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과거 사례와 비교해도 형평성을 잃었다. 새노조가 24일 낸 특보에 따르면 김 사장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부하직원에게 상습적으로 욕을 한 사람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았고, 금품수수 및 횡령에 친조카 채용 등 파렴치한 비리를 저지른 경우도 '감봉 1개월'이 고작이었다.
억지로 꿰어 맞춘 듯한 해고 사유는 KBS뿐만이 아니다. 석 달 가까이 파업 중인 MBC에서는 이번 파업으로 벌써 3명이 해고됐는데, 1호 해직자 이용마 기자의 징계 사유도 '회사 질서 문란'이었다. 보복성 해고 남발은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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