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3시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의 한 대형 냉장창고. 7명의 농림수산검역본부 검역관들이 미국 캔자스 가공공장에서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박스 977개 중 294개를 차례로 열었다. 정부가 전날 결정한 ‘30% 개봉검사’ 조치를 이행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일단 밀봉 포장된 박스당 15~20개의 쇠고기 제품에 이물이 껴 있는지, 포장상태가 괜찮은지 등을 육안으로 검사했다. 이어 수천 개 포장 제품 중 부위가 다른 3개를 골라 절단검사를 했다. 부패가 있는지 냄새를 맡고 뇌, 척수 등 특정위험물질(SRM)이 있는지 여부도 육안으로 확인했다. *관련기사 2ㆍ3면
첫날 검사 결과는 ‘이상 무’. 평소 ‘3% 개봉검사’에 1명이 하던 일이었으나, 이날은 본부와 서울사무소 등에서 긴급 파견된 7명이 달려들어 1시간20분 만에 끝났다. 한 검역관은 “육안 검사로는 SRM 제거 여부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며 “광우병 발견보다는 국민 불안을 덜기 위한 검사인 셈인데 인력이 부족해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으로 4년 만에 다시 민심이 들끓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발견된 광우병 젖소가 국내에 수입되는 종류(30개월 미만 육우)와 다른데다 도축 대상이 아니고 인체 감염 사례를 남긴 ‘정형’도 아니어서 국민 식탁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광우병을 일으킨 미국의 소 사육 환경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3%를 뜯어 보던 검사를 30%로 늘린다고 해서 미세한 광우병 인자가 눈에 들어올 리도 없다. 현장 검역관과 농림수산식품부 관료들조차 검사확대의 지속 가능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신뢰, 즉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여기고 행동한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정부는 2008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막상 광우병이 재발하자 “무조건 수입중지를 약속한 게 아니다. 축약 표현된 당시 신문광고 만으로 여론을 호도하지 말라”며 오히려 큰 소리다. 전국에 수백 만개의 촛불이 타오르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미국 농무부는 이날 “수입을 유지한 한국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이번 대응으로 미국에 대한 외교적 신뢰는 지켰는지 모르지만, MB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4년 전에 이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미국과 맺은 특혜성 수입위생조건 고시로 즉각 수입제한을 하기 어렵자, 불안 여론을 달래기 위해 실질적인 효력이 전혀 없는 개봉검사 확대로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곤지암=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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