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생산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일단 해당국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하고 위험요인이 완전히 해소된 뒤 수입을 재개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는데도 수입 중단은커녕 그 전 단계인 검역 중단조차 유보했다. 미국에는 왜 이런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걸까.
쇠고기 수입중단 조건을 놓고 보면 미국은 특혜국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까지 광우병이 발생했던 캐나다는 물론, 광우병 청정국인 호주 뉴질랜드도 현지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도록 수입위생조건에 명시했다. 그러나 유독 미국과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 통제국 지위를 박탈했을 때만 수입 중단이 가능하도록 합의했다.
현지 작업장 조사권도 미국에만 예외를 인정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한국 수의관이 현지 작업장을 점검하고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중대 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즉각 수출 중단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캐나다 등 일부 국가에 대해선 한국 수의관이 해당 작업장의 승인까지 취소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대표성 있는 표본 작업장’에 대해서만 점검할 수 있고, 그나마 중대한 위반사항을 발견해도 결과를 통보한 뒤 미국 정부의 조치를 기다려야 한다.
수입 재개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와 사전 협의토록 규정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은 문제가 발생해 작업을 중단한 육류작업장 개선 조치와 작업 중단 해제일자를 한국 정부에 ‘통보’만 하면 된다. ‘수출국은 과거 5년간 광우병 발생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조건도 미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관계자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이후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열어 대미 관계와 국제적 기준 등을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 다른 나라보다 확연히 느슨한 기준을 적용했음을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캐나다에선 지금까지 18건의 광우병이 발생했으나 미국은 2008년 수입위생조건을 협의할 당시 광우병에 안전한 것으로 판단됐다”고 해명했다. 미국이 캐나다보다는 광우병 위험이 덜해 느슨한 잣대를 댔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의 수입위생조건이 광우병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쇠고기 청정국 호주와 뉴질랜드보다 더 관대한 데 대해선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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