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소반에 차린 간략한 술상을 들고 와서 내게 내밀었다.
식전주나 올려라. 밥상은 내가 들여갈 테니.
나도 이제는 자못 침착해져서 술상을 들고 방에 들어가 앉았다. 말없이 술을 따라 주었고 그는 마셨다.
삼례로 시집을 갔다더니……
거울이 깨졌답니다. 애초에 인연이 아니었던지라.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소.
하는 이신통의 말이 야속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방바닥에 똑똑 떨어졌다. 나는 그 밤을 오롯이 이 서방과 함께 보냈다. 엄마는 새 이부자리를 들인다 방의 군불을 지핀다 하며 내놓고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사흘 동안 묵었는데 칠팔 명의 동행이 와서 앞채에 들었다. 그들은 그믐께에 강경을 떠나 삼례로 출발했다.
우리네야 소문으로나 알지 직접 본 것이 아니라서 내막은 잘 몰랐다. 그들이 삼례에서 천여 명이나 모였던 것은 전라 감영에 신원을 하기 위함이라고 했으며, 교주를 혹세무민으로 처형한 것은 잘못이며 더 이상 천지도의 도인들을 침탈 억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돌아갈 때 그가 다시 들를까 기다렸지만 열흘 뒤에 집회가 해산되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이신통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두 해가 못 가서 온통 전국을 뒤흔들었던 난리가 일어났다. 강경 장에도 천지도의 도인들이 군대를 이루어 몰려들었고 그들은 강경 은진을 거쳐서 끊임없이 북으로 올라갔다. 봄부터 조선의 난리를 평정한다고 일본군과 청군이 앞을 다투어 들어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리고 그들 외국 군대는 조선 땅에서 저희끼리 전쟁을 벌여 일본이 이겼다고도 했다. 그 해 가을 이신통은 잠깐 우리 객점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고, 우리 집에서 아내와 함께 곁꾼 살던 안 서방이 허락해준다면 그를 따라가겠다고 내게 말하여 나는 엄마 몰래 인절미를 찧어 바랑 속에 담아주며 당부했다.
우리 이 서방과 꼭 붙어 다니세요. 그 은공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습니다.
작은 마님은 저희 식구들의 목숨을 살리셨습니다. 제가 어찌 그 일을 잊겠습니까?
그들은 새벽에 길을 떠났고 그 다음 달 중순경에 피투성이의 반송장이 되어 돌아오게 된다. 이제나 저제나 좋은 소식이 오려나 기다려보았지만 공주까지 나아갔던 민군 중에 이탈하여 오는 이들이 별의별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세월이 하수상하여 해시 무렵만 되면 대문을 걸어 잠그고 늦은 손님은 되도록 받지 않았다. 거의 어둑새벽 인시 즈음하여 뒤채에서 우리 모녀가 깊이 잠들어 있었는데, 문고리를 딸각이며 숨죽여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먼저 잠이 깨어 헛기침을 하고는 태연한 듯이 물었다.
밖에 누가 왔소?
예에, 저 막음이 애비입니다.
내가 먼저 미닫이를 젖히고 마루로 뛰어나갔고 반가운 김에 서슴없이 안 서방의 두 손을 잡아 쥐었다.
이 서방은 어디 있어요?
지금 저 뒤편 텃밭에 와 있습니다. 쪽문을 열어주셔야겠습니다.
안 서방과 같이 뒷마당의 담장에 달린 쪽문을 열고 배추밭으로 나서니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이신통은 배추를 등에 깔고 널브러져 있었고 안 서방과 내가 양쪽에서 부축하여 일으켰다. 안 서방이 그를 등에 업어다 뒤채까지 옮겨갔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쓰던 안방 문을 열고 말했다.
이리 들이게.
불을 켠 방에 들어와 보니 그의 바지 아랫도리가 피로 칠갑을 하고 있었다. 이 서방은 아직 인사불성이었는데 맨발로 수십 리 길을 걸어왔는지 발에도 돌에 채인 상처가 여러 군데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바지 위에 옷을 찢어서 칭칭 동여매놓았고 별 수 없이 가위로 옷가지를 잘라내야 했다. 엄마는 외면하고 내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니 구멍이 벌어져 있고 주위는 퉁퉁 부어올라와 있었다. 안 서방이 곁에서 말했다.
총에 맞았지요. 저만하기가 다행입니다.
하더니 그는 소매를 들어 웃는 것 같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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