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결국 법망을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최 전 위원장이 브로커 이동율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한데다,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등 이명박 정부 고위공직자에게 파이시티와 관련한 청탁 전화를 한 사실도 확인됐기 때문이다.
최 전 위원장은 25일 오전 검은색 에쿠스 승용차를 타고 변호인과 함께 대검찰청 청사에 나왔다. 최 전 위원장이 차에서 내릴 때 '언론장악 몸통, 최시중 구속'이라고 쓴 피켓을 든 언론노조 조합원들이 달려나오다 방호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최 전 위원장은 '청탁 대가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에 왔으니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말만 남긴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11층 조사실에서 여환섭 대검 중수2과장과 간단히 차를 마신 뒤 변호인과 함께 밤늦게까지 조사에 임했다.
검찰은 이르면 26일 최 전 위원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검찰은 기존 알선수재 사건 전례를 보더라도 영장 발부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최 전 위원장이 수수한 돈이 5억~6억원에 이를 정도로 거액인데다 사안의 중대성도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은 브로커 이동율씨의 운전기사 최모씨가 최 전 위원장의 금품 수수 현장을 찍은 사진의 복사본도 확보했다. 최 전 위원장이 이씨의 집 앞에서 돈 보자기를 전달받는 적나라한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 영장심사에서 결정적 증거물이 될 전망이다. 이 사진의 원본은 운전기사 최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협박 편지를 보내 돈을 뜯어낸 뒤 폐기됐었다. 하지만 검찰은 최씨가 내용증명으로 편지를 보낸 사실에 착안, 우체국에서 보관 중인 편지와 사진의 복사본을 찾아냈다.
또 최 전 위원장이 2011년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2010년 권재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파이시티와 관련한 청탁 전화를 한 사실도 드러나 알선수재 혐의의 기소 요건을 모두 갖췄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영장이 발부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가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후 검찰 수사는 자연스럽게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의 최종 사용처를 규명하는 것으로 집중될 전망이다. 최 전 위원장이 이미 대선자금을 언급한 이상, 검찰로서는 실제로 대선 여론조사 등에 돈이 쓰여졌는지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정치자금 관련성이 발견될 경우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될 수 있다.
나아가 최 전 위원장의 신병이 확보되면 그를 둘러싸고 그간 제기됐던 EBS 이사 선임 및 차세대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의혹,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직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 등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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