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자마 하바예브(45ㆍ요르단), 마리암 알 사에디(38ㆍ아랍에미리트), 라니아 마문(33ㆍ수단) 등 아랍권 여성 소설가 3명이 동시에 한국을 찾았다. 26일부터 사흘간 인천에서 열리는 '제3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AALA) 문학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문학평론가 김재용 원광대 교수의 통역으로 25일 만난 이들은 지난해 아랍 전역을 휩쓸고 지금도 진행 중인 민주화 운동에 대해 "바깥에서 보면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번 혁명에는 자유와 사랑, 인간적 가치에 대해 지속적으로 써온 아랍 작가들의 공로가 크다"며 "문학은 혁명 이후에도 아랍 사회에 새로운 정신적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바예브씨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번 혁명에 큰 기여를 했지만, 이들이 혁명 이후 아랍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면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라며 "혁명은 종교 아닌 '세속 사회'의 수립으로 귀결돼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알 사에디씨는 "혁명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조그만 권력을 두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실망감을 느낀다"며 "아랍사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이런 인간 내부의 폭력 질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마문씨는 조국 수단이 지난해 남수단과 갈라서고 최근 유혈 충돌을 빚는 상황에 대해 "가깝게는 종교 갈등, 멀게는 유럽 식민주의 유산이 겹친 비극"이라며 "이런 상황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자 중심ㆍ주류가 아닌 소외된 주변부의 시각에서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문학적 주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생계를 위한 직업을 따로 갖고 있다. 하바예브와 마문씨는 저널리스트이고, 알 사에디씨는 수도 아부다비 교통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다. 마문씨는 "수단에는 (경제적 이유로) 전업 작가가 많지 않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 쓰는 것이 현실이다. 작가들의 직업은 대개 저널리스트"라고 설명했다. 하바예브씨는 "창작과 노동, 육아까지 3중고를 겪느라 글쓰기가 쉽지 않다"며 "아랍 여성 작가들이 단편을 많이 쓰는 이유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알 사에디씨는 "나는 직장에서 작품을 쓰기도 한다"며 "처음엔 상사 모르게 썼지만 지금은 눈치 안 본다"며 웃었다.
방한에 맞춰 세 사람을 비롯해 현대 아랍문학에서 촉망 받는 여성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이 출간됐다. 알 사에디씨는 출근 첫날 직장 상사 앞에 차를 엎지르고 해고되는 남자를 그린 '기름 얼룩'을 이번 선집에 실었다. 그는 "부자 나라로 유명한 아랍에미리트의 이면, 여러 지역에서 이주해온 가난한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쓴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한참 터울이 지는 남자와 선을 보는 열두 살 소녀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린 단편 '도전'을 실은 하바예브씨는 팔레스타인 이민자 가정 출신. 그는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난 외로움, 인간의 고통과 모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며 "내 문학의 근본 주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이지만, 그것을 팔레스타인 문제를 통해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27일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장에서 시인 장석남 김민정, 평론가 이경재씨 등 국내 문인들과 공개 대담을 갖는다. 인천문화재단이 주관하는 AALA 문학포럼에는 중국 소설가 옌롄커 류전윈, 가나 시인 코피 아니도호, 페루 원주민 작가 글로리아 다빌라 에스피노사 등 해외 작가 14명이 참가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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