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발발(1904년 2월) 직전 고종 황제가 이탈리아 국왕에게 보낸 비밀 친서가 발견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6일 개막하는 기획전 ‘로쎄티의 서울, 1902_1903’에 이 문서를 공개한다. 카를로 로세티는 해군장교 출신의 지리학자 겸 외교관으로 1902년 11월부터 1903년 5월까지 제3대 이탈리아 영사로 대한제국 수도 서울에 주재하면서 당시 서울과 서울 사람들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겼다.
‘짐의 좋은 벗 의국(義國) 군주 폐하께’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이 친서는 고종 황제가 1903년 11월 23일에 쓴 것으로, 러일전쟁이 터지면 대한제국은 중립을 지킬 테니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의국은 이탈리아를 가리킨다. 친서에 밝힌 대로 이후 대한제국은 1904년 1월 21일 전시 중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2월 개전과 동시에 일본군을 상륙시키고 서울에 진주했다.
이 친서는 로세티의 후임인 아틸리오 모나코 판리공사(瓣理公使ㆍ영사급)가 이탈리아 외교부에 보냈다. 당시 함께 전달한 보고서에는 “한국의 황제님께서 저를 비밀리에 불러 아무도 이 편지에 대해 알지 않았으면 좋겠고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쓰여 있어, 풍전등화 같던 나라의 운명 앞에 고종황제가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친서는 이번 전시를 공동주최하는 주한 이탈리아대사관의 세르지오 메르쿠리 대사가 이탈리아 해군과 외무부 아카이브에 로세티 관련 자료를 찾아서 보내달라고 요청해 받은 것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황제가 주한 외교사절을 직접 불러 내린 친서이고 이탈리아 외교부에 확실히 전달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학적 외교사적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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