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불행이 유독 커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개인도 그렇지만, 또래집단으로서의 세대의식도 마찬가지다. 최근 부쩍 자주 거론된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생)의 불안한 미래상이 좀처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58년 개띠'의 운명일 게다.
다만 주관적 과장을 최대한 덜어내더라도 베이비붐 세대가 느끼는 불행에 객관적 이해가 닿을 만한 구석이 있다. '베이비붐 세대'라는 인구통계학적 용어가 드러내듯, 청소년기의 치열한 경쟁을 우선 꼽을 수 있다. 출생 100만 명을 처음 돌파한 1958년 개띠가 대학에 진학한 1977학년도의 대학입학 정원은 7만 명에 불과했다. 나중에 '졸업정원제'시행 이후 대입 정원이 크게 늘어난 데다 문민정부 시절의 '대학 폭발'에 힘입어 많은 또래들이 대학 졸업장을 받아들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의 마음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런 과거의 불행은 세월의 먼지가 쌓이며 흐릿해질 수 있다. 반면 막 예고되기 시작한 미래의 불행은 어느덧 삶에 지친 또래집단의 어깨를 한결 무겁게 한다. 고생 끝에 낙은 고사하고 짙게 드리워진 불안의 그림자조차 걷히기 어렵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는 은퇴가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가 현재의 생활비는 물론이고 미래의 생활비를 겨냥한 창업 자금까지 빚에 의존하는 실태를 드러냈다. 전체 가계대출에서 50세 이상 '고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꾸준히 상승, 지난해 말에는 46.4%에 달했다. 2003년 33.2%보다 13.2%포인트나 높고, 같은 기간 8%포인트인 인구비중 증가에 비추어도 급격하다. 이들의 가계부채가 은행권보다 비은행권에서 가파르게 늘어났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보고서에 나타난 기업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 악화, 채권은행의 중소기업 구조조정 대상 기준인 한계기업의 증가 추세 또한 가계부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지난해 연매출 100억 원 미만 소규모 중소기업의 영업이익은 -4.8%, 부채비율은 200%였으며 35%가 한계기업으로 분류됐다.
공교롭게도 가계부채나 기업의 재무건전성 악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 것이 '베이비 붐 세대의 은퇴로 음식ㆍ숙박업, 부동산 임대업 등 창업이 늘어났지만 경기 침체와 경쟁 격화로 실적이 나빠진 것'이다. 실제로 50세 이상 창업자 비중은 2008년 47.1%에서 지난해 53.9%로 크게 늘어났다. 생활자금과 창업자금을 부채에 의존해야 하고, 은행권의 대출 축소 움직임에 떠밀려 이자 부담이 큰 비은행권에 손을 벌리고, 어렵게 창업을 하고도 제대로 수익을 못내 빚을 줄이지 못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맨 얼굴이다.
이들의 불행은 자산 보유 형태에서도 두드러진다. 베이비붐 세대가구의 평균 총자산은 3억3,000만원으로, 전체가구 평균인 2억7,000만원을 웃돈다. 그런데 총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2억4,700만원으로 75% 가깝다. 평소 같으면 다른 세대의 부러움을 살 만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길고, 가까운 장래에 되살아나기 어려운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다. 상당수가 대출을 안고 주택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식기 직전인 2007년까지도 주택담보 대출을 꾸준히 늘렸다가 2008년 이후의 시장 침체로 매도 기회를 놓친 채 늘어나는 채무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예상 움직임에 대한 다른 세대의 눈길도 곱지 않다. 다른 소득원이 마땅찮아 빚 부담을 견디기 어려운 반면 자녀에 대한 책임감은 유난하다. 치솟는 자녀 결혼자금을 대고, 부채 압력을 덜기 위해 결국 주택 매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시장에 만연한 공급 과잉의 해소를 막거나 늦추는 요인이다. 그 결과 자산 디플레 조짐이 뚜렷해지고, 그것이 다시 공급 과잉을 부르는 악순환을 촉발할 수 있으니 고운 눈으로 보기 어렵다.
청년의 분노와 노년의 낙담 사이에서 중년의 우울도 커져 간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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