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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크루즈 타고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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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크루즈 타고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섬들

입력
2012.04.2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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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여행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내 소개됐지만,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비행기로 한두 시간이면 닿을 거리를 굳이 1박 2일 배를 타고 갈 게 뭐냐는 다분히 경제적인 논리, 배 안에서 뒹굴거리는 건 다리 힘 빠진 호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하는 것이란 생각, 여기에 '크루즈=호화 여객선'이란 고정관념까지 얽혀, 국내 여행산업을 떠받치는 팔팔한 경제인구들은 같은 값이면 다른 여행을 계획하기 마련이다.

계산기 두들기는 살뜰한 여행객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으니, 여행의 묘미는 도착지까지의 설렘과 기다림에 있다는 사실이다. 크루즈여행은 왕복 여정에 초점을 둬, 이 재미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풍경이 움직이네

여름 한철 부산이나 인천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도 있지만, 대개 국내에서 크루즈 여행을 하려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로 날아가 다시 배를 타야 한다. 크루즈 여행을 하러 싱가포르로 갔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섬들을 둘러보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2박 3일 코스다.

첫 날의 미션은 '안전하게 배에 오를 것'. 아침 비행기로 6시간을 날아 도착한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20분을 달려가니 하버프런트 크루즈 선착장이 나왔다. 7만6,800t의 대형 크루즈 슈퍼스타버고 호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이 268m 폭 32m의 이 배는 총 13층에 객실이 935개로, 최대 1,870명까지 수용 가능하다.

배가 말레이시아를 거치는 만큼, 승선 때는 비행기처럼 탑승 수속을 해야 한다. 체크인 카운터에 여권을 맡기고 임시 신분증, 객실 열쇠, 신용카드 기능이 포함된 '시패스(sea-pass) 카드'를 받았다. 발코니가 딸린 11층 방을 배정받았다. 일본의 비즈니스 호텔방과 비슷했다. 트윈 침대, 소파, 책상, 화장대, 텔레비전과 내선 전화 등 웬만한 물품은 다 갖춰져 있었고 발코니에 놓인 해변 의자에 앉으면 싱가포르 밤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녁 8시, 배가 출발했다. 길쭉 길쭉한 빌딩들을 뒤로하고 배가 망망대해로 나아간다. 배가 미끄러지는 자리마다 파도가 하얗게 부풀었다. 가만히 있어도 풍경이 움직이니, 거저 먹는 여행이다. 물기 먹은 바닷바람도 상쾌하다.

심심할 사이가 없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제일 많이 들은 말은 "할 일 없어 심심하다던데…"였다. 바닷바람 쐬며 배에서 뒹굴거리는 게 크루즈 여행의 전부일 거란 말과 달리, 크루즈에는 꽤 많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가 있다. 12층에 마련된 실외 수영장에서는 매일 밤 파티가 열리고, 8층 극장에서는 각종 쇼가 펼쳐진다. 카지노, 영화관, 갤러리, 도서관, 면세점 등 웬만한 중소 관광 도시의 놀거리는 다 있다. 9개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입맛에 맞춰 일식, 양식, 중식, 인도식 음식을 하루 6끼 내놓는다. 그러니 객실에서 뒹굴거리며 바다나 보려던 생각이 바뀌었다. 열심히 계획을 세워 부지런히 배를 구경해야 했다.

승선객들은 매일 아침 선내 신문 '스타 내비게이터'를 받아본다. 한국인 관광객들 객실에는 한글판이 배달된다. 하루 동안 열리는 수십 개의 공연, 파티와 편의시설의 위치, 이용 방법 등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 취향 따라 골라 참가하면 된다.

기항지인 말레이시아 르당섬은 가장 큰 규모인 르당섬과 몇 개의 부속섬으로 이뤄진 관광지다. 부속섬까지 모두 합해 '르당섬'이라고 부른다. 둘째날 기항지에 도착하면 각자 취향에 맞는 부속섬으로 나가 스포츠나 관광을 즐기면 된다. 섬에 크루즈가 정박할 전용 부두가 없어 인근 해역에 닻을 내리고 전용 페리 편으로 20여 분을 더 들어가 기항지 투어에 나섰다. 본섬인 르당섬의 라구나 리조트와 부속 섬인 '르당 아일랜드 머린파크'에 갔다. 두 곳 모두 물 빛깔이 맑아 스노클링 명소로 꼽힌다. 물속을 유영하는 다양한 열대어와 산호와 물장구치는 연인들을 감상할 수 있다. 라구나 리조트 해안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일행이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여기 사진, 꼭 하와이나 발리 해변 같이 나오네." 다른 일행이 거들었다. "그냥 봐도 그렇거든." 바닷가 모래가 갓 빻은 쌀가루 같이 부드럽다.

기항지 투어는 오후 1시부터 7시까지다. 기항지로 나가는 마지막 배는 오후 5시까지 있다.

저녁 8시, 17시간 걸려 열심히 말레이시아로 왔던 배가 다시 열심히 싱가포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다양한 관광객 모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낮이 아니라 밤이라던가. 크루즈에서는 밤마다 관광객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선상 파티를 여는데 둘째 날은 인도인들이 판세를 쥐어 자정을 넘어서는 발리우드 영화 한 장면처럼 인도 노래와 춤 향연이 펼쳐졌다. (인도인들은 진짜, 뮤지컬 배우처럼 춤춘다.) 싱가포르발 크루즈 이용 승객들은 인도, 말레이시아인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인도 관광객이 다수를 차지해 인도식당이 따로 있을 정도다. 간혹 호주, 미국, 이탈리아에서 싱가포르로 관광 온 사람들이 섞여 있다.

일 년에 대략 1,800명 가량 한국인이 이 배로 여행을 했는데, '뱃멀미로 제대로 못 놀았다'고 불평한 관광객은 없었단다. 항해 중인 크루즈선 실내는 KTX가 최고속력을 달릴 때만큼 미세하게 떨린다. 여행 첫 날 배가 흔들려 제대로 못 잤다던 일행도 둘째 날에는 다음날 아침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마지막 날에도 이러저런 행사가 부지런히 열리지만, 밤새 즐겼던 사람들은 대개 푹 늘어져 각자 방에서 쉰다. 발코니에서 움직이는 풍경을 보며 잠이 들려는 찰나, 배가 싱가포르 선착장에 도착했다.

잠깐 풍경 좋은 영화 한 편을 본 듯, 살짝 볕 좋은 날 물가 나들이를 한 듯 기분이 개운하다. 싱가포르 시내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 여행수첩

▦기자가 탔던 크루즈는 싱가포르를 출발해 동남아 휴양지를 여행하는 스타크루즈사의 슈퍼스타버고호로 연중 계속 운항한다. 다른 회사로 로열캐리비언크루즈, 코스타크루즈도 겨울에 잠깐 크루즈를 운항한다. 포트클랑(말레이시아), 페낭(말레이시아)-푸켓(태국), 르낭(말레이시아) 코스 등이 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한진관광 등에서 항공편이 포함된 크루즈 상품을 판매 중이다. (2박 3일 기준 149만원부터) 문의 스타크루즈 한국지사 (02)733-9033 www.starcruisekorea.com

▦시차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모두 한국보다 1시간 늦다. 싱가포르에서는 면세품 휴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는데, 특히 크루즈를 타고 해외를 다녀올 때 포장을 뜯지 않은 새 담배를 갖고 있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 기항지가 덥고 습하기 때문에(25도에서 35도, 습도 80%) 옷차림은 가벼운 게 좋다. 단, 크루즈 실내는 18~20도로 약간 선선하기 때문에 긴팔셔츠나 카디건을 가져야 한다. 선내 일부 레스토랑은 드레스코드를 갖춰야 들어갈 수 있다. 깃 없는 셔츠나 반바지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싱가포르=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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