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품고 이 땅에 정착해 고단하게 살다가 다시 고국으로 가야 하는 이주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들앞에 놓인 꽉 막힌 현실과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크고 작은 고통들을 녹여냈습니다."
시인이자 이주민인권운동가인 이세기(49)씨가 최근 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그는 "이주민을 대신해 받아 적은 이주의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이주민들과의 인연은 7년이나 됐다. 2005년 어느 날 힘겹게 살아가는 이주 노동자의 사연을 다룬 TV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게 됐다. "그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을 보면서 25년 전 현장 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운동을 했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다'고 직감했지요."
무작정 찾은 이주민 인권센터에서 인턴 3개월을 한 뒤 본격적으로 이주민 상담활동을 시작했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황에서 상담은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17년 동안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공장의 이주민, 이주 노동자는 '이국의 향신료만큼이나 낯선 존재'로 다가오더군요. 그 이질감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극복 됐어요. 노동 현장에서 자주 얼굴을 맞대면서 그들이 신기하거나 특이할 것 없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고 이웃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거죠."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그는 일주일에 하루를 제외하곤 매일 상담에 매달렸다. 시간이 허락할 때는 센터를 나와 공장지대를 돌며 이주민들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만난 이주민들이 1,500여명이다.
"하루에 많을 때는 10건 넘는 상담을 했어요. 내용도 다 달랐고요. 임금체불, 폭행, 산업재해 등이 주였지만, 간혹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들도 도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웃고 울면서 보낸 7년의 기억이 일기처럼 일지에 남았습니다."
활동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을 묻자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이주 노동자 문제의 특성상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었던 공장주들은 버거웠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서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도대체 누구 편이냐"는 식의 막말과 원망을 툭하면 쏟아냈다.
이씨는 "공장주들과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긴 설명을 늘어놓아야 했다"며 "무엇보다 이주민들도 한국 노동자와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이주민 문제 해결의 출발은 이들에 대한 인식 전환입니다. 이주민도 인간이라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식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정책도 소용이 없습니다."
글·사진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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