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도 있었지만 김창완밴드가 한국 록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김창완밴드는 산울림의 또 다른 이름일까, 산울림과는 별개의 밴드일까. 김창완밴드의 세 번째 정규 앨범 '분홍굴착기'가 그 질문의 답이 될 것 같다. 김창완(58)은 25일 서울 마포구 한 공연장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산울림을 계승의 대상으로 생각하지만 극복의 대상으로도 생각했다"고 말했다. 산울림 결성 35주년을 기념해 지난 17일 발매한 '분홍굴착기'는 산울림이 발표한 13개 정규 앨범에서 선정한 11곡과 신곡 한 곡을 담았다.
김창완(기타, 보컬)이 1975년 두 동생 창훈(베이스) 창익(드럼)과 함께 결성한 산울림은 사이키델릭 록에서 하드 록, 아트 록, 심지어 동요에 이르는 다양하고 혁신적인 음악으로 한국 록 음악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아니 벌써'가 담긴 데뷔 앨범 '산울림 새노래 모음'(1977)과 이듬해 발표된 2집은 해외 록 마니아들에게도 수집 대상으로 꼽히는 명반이다. 산울림은 2008년 1월 막내 창익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사실상 해체됐지만, 그 해 말 결성된 김창완밴드가 명맥을 잇고 있다.
김창완은 최근 들어 밴드의 정체성이 잡혀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산울림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김창완밴드를 결성했지만 초기에는 산울림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색채를 내세우기보다 밴드 각 멤버의 기량을 최대한 드러내려 했는데, 2008년 말 낸 데뷔 EP(미니앨범) 'Happiest'와 첫 번째 정규 앨범 'Bus'(2009) 그리고 두 번째 EP 'Darn It'(2011)이 그 결과물이었다. 그는 "초기엔 산울림으로부터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다지 변별력이 없었다"며 "이젠 라인업이 정리되면서 김창완밴드다운 소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굵직한 선율과 묵직한 리듬의 하드 록으로 채워진 '분홍굴착기'가 충분한 설명이 된다.
'분홍굴착기'에 수록된 산울림의 곡들은 여느 '히트곡 모음집'과 거리가 멀다. 2집에 실린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제외하면 모두 후기작인 9~13집 수록곡이고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다. 김창완은 "산울림을 재현하는 것이 무모하다고 생각하는 곡들, '산울림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곡들은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김창완이 낮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금지곡'은 새 앨범에 담긴 유일한 신곡. 그는 "폭로전으로 얼룩진 총선을 보면서 그런 일들이 삶의 목표라면 그렇게 애써서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런 노래가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반어법적인 생각에 '금지곡'이란 제목을 짓게 됐다"고 했다.
김창완밴드는 이날 간담회가 열린 지하 공연장에서 '분홍굴착기'를 녹음했다.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악기를 따로따로 녹음하지 않고 라이브처럼 한 번에 연주한 것을 담았다. 올 2월 그래미시상식에서 클래식 부문 녹음 기술상을 받은 황병준 엔지니어의 총 지휘로 12시간 만에 전 곡을 녹음했다. 황씨는 이날 간담회에서 "음악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고 밴드 안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창완은 "아무리 노력해도 (산울림 시절의) 설렘과 신선함을 연주에 불어넣을 수 없어 좌절했는데 원테이크로 녹음하면서 긴장감을 최대한 담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산울림을 출발점으로 삼았던 김창완밴드는 '분홍굴착기'로 새 출발을 알렸다. 기타리스트 염민열과 드러머 강윤기가 가세하며 재정비한 밴드는 사운드나 결속력에 있어 더욱 단단해졌다. 김창완은 '분홍굴착기'가 한국 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앨범이 되기를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산울림의 곡을 다시 녹음한 것은 '이전에 읽었던 책'을 참고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산울림을 재발견하는 계기도 됐죠. 앞으로는 새로운 김창완밴드가 나오지 않겠습니까.(웃음)"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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