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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느린 노래가 지나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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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느린 노래가 지나가는 길

입력
2012.04.25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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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빗방울이 떨어져 산을 녹이고 산길을 녹여서 산의 일부를 파내 길의 일부를 파내 새로운 길이 하나 생겨나게 하여서 예전에 데리고 내려오던 길을 종종 잃어버리게 한다 하여 사람들은 따듯한 삽으로 흙을 떠서 한 사람이 지나가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한다 그 산길의 가지 끝에 둥지를 올려놓은 새의 말이 오늘은 푸릇푸릇 이기적으로 흔들리고 할 때 저 멀리서 노인을 꽃가마에 태운 이들이 산길을 올라가면서 느린 노래를 부르며 느린 노래를 몇송이 떨어뜨려 참나무 진한 잎사귀에 싸서 꽁꽁 묶어놓을 때 꽃그늘 아래 수북이 앉아있던 키 작은 꽃들의 물음이 저 할아버지는 누구야 바라보다 누군가의 발바닥에 밟혀서 뭉개져버린 얼굴이 다시 이게 뭐야 고개를 들어서 꽃가마 서늘하게 지나가버린 길바닥을 환하게 다시 보고 싶어한다

니체는 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날 사람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이 과도한 초조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 어떤 사람은 불공정한 저울을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고액의 보험을 든 후에 자신의 집에 불을 놓고, 어떤 사람은 위조 화폐 제조에 참여한다.… 이는 그들이 실제로 궁핍하기 때문이 아니다.… 돈이 쌓이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초조감과 축적된 돈에 대한 끔찍한 욕망과 애정이 밤이든 낮이든 그들을 몰아대는 것이다." 시는 아주 느리게 파이는 산과 느리게 만들어지는 길과 느리게 지나가는 걸음을 노래합니다. 아주 느린 노래에 맞춰 천천히 가는 꽃상여. 시인이 느린 목소리의 노래로 초조한 사회의 급한 이들에게 경고합니다. 잠깐! 지금 죽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당신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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