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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같은 軍 진지 줄지어… 은평뉴타운의 '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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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같은 軍 진지 줄지어… 은평뉴타운의 '흉물'

입력
2012.04.2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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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은평뉴타운 북쪽 창릉천 변. 운동기구가 놓인 산책로 옆으로 대여섯 명이 들어갈 만한 나무로 만든 시설이 눈에 띄었다. 안에는 마주보고 앉을 수 있도록 의자가 달렸고, 지붕과 옆에는 흙이 덮여 있었다. 북쪽으로는 창문처럼 사각형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었다. 산책을 하던 이들 중 몇몇은 안에 들어가 햇빛을 피했다. 이 희한한 시설이 창릉천 건너편에서는 군 벙커(진지)처럼 보이지만, 은평뉴타운 쪽에서는 마치 뚜껑이 있는 벤치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시민은 "아파트 위에서는 마치 무덤들이 죽 늘어선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을 조성한 SH공사에 따르면 군 진지는 북한산 쪽 입곡삼거리부터 통일로 언저리까지 창릉천 남쪽을 따라 30~40m 간격으로 56개나 설치됐다. 전차용 진지 6개에 106㎜ 무반동총용이 2개이고, 나머지는 보병용이다. 뉴타운 옆 진지들은 이미 완성됐고, 현재는 경기 고양시 경계까지 미완성된 진지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다.

군 진지의 시작은 은평뉴타운 조성이 시작된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파발 일대 도로에는 북한 전차를 막기 위한 방호벽들이 우뚝 서 있었고, 창릉천 변에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군 진지들이 자리잡고 있다. SH공사는 기존 군 시설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진지를 만들어주기로 협의했고, 설계 당시에는 군 요청을 반영했다.

하지만 완성된 진지에는 주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그 모습 자체도 이질적이지만 뉴타운에 군사도시 이미지를 덧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민 송모(36)씨는 "북한과 더 가까운 경기북부에서도 방호벽들을 철거하고, 한강 하구에서는 철책을 걷어내는데 집 옆에 이런 게 있으니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한편 창릉천을 끼고 조성 중인 경기 고양시 삼송택지개발사업지구에도 군 진지가 들어선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하는 삼송지구는 사업부지 일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에 포함, 군 협의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고 협의 과정에서 진지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비용은 LH 부담이다.

북한산에서 발원한 창릉천은 삼송지구 안을 2.5㎞ 정도 흐른다. 비슷한 거리를 흐르는 은평뉴타운에 56개가 생긴 만큼 삼송지구에도 비슷한 숫자의 진지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삼송지구 입주예정자들은 LH와 군 부대 등에 "절대 안 된다"며 강력 항의하고 있다. 고양시도 LH에 "은평뉴타운 형태의 진지는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원이 폭주하자 LH는 진지 공사를 시작도 하지 못하고 군과 진지 형태를 바꾸기 위해 협의 중이다. 진지를 시공할 아파트 건설사들에도 협조를 구했다. LH 관계자는 "아직 새로운 형태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혐오스럽지 않은 조형물 형태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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