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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근혜 대세론의 함정

입력
2012.04.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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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세론은 참으로 강고하다. 모두 질 줄 알았던 선거에서 이긴 것도 그렇지만 1년 넘게 35% 안팎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회창 대세론도 있었고 고건 전 총리나 이인제 의원이 여론조사 1위를 기록한 적도 있지만 박근혜 대세론에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이었다.

여야 후보가 정해지기 전에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이들의 지지도는 대개 20% 안팎에 머물렀다. 김대중 김영삼 같은 걸출한 지도자도 그 정도 수준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명 중 서너 명이 옆에 서줄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정치적 힘이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도 최근 몇 개월간 30%대의 지지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박근혜 대세론과는 한참 차이가 있다. 안 교수는 지극히 옳은 얘기를 가끔 하는 구름 위에 있지만, 박 위원장은 직접 현안을 풀어가면서 상처를 입어야 하는 땅 위에 있기 때문이다.

꿈을 얘기할 때는 적이 없지만, 구체적 문제를 논하기 시작하면 실망하는 사람, 의견이 다른 사람이 더 많아지기 마련이다. 커피로 치면, 박근혜 대세론은 진한 원액의 에스프레소이고 안철수 현상은 맛이 부드러운 카푸치노에 가깝다고나 할까.

지지도에다 총선 결과를 보태면, 박 위원장이 강고한 지지층에 조금만 더 얹히면 이길 것처럼 보인다. 120석만 얻으면 좋겠다는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얻고 18대 때 1석밖에 건지지 못했던 충청에서 12석을, 최근 두 차례 지사 선거에서 졌던 강원에서 전체 의석을 석권했으니, 박 위원장은 가히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의 주인공으로 비유될 만하다. 이를 반영하듯 선거 직후 이루어진 대선주자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박 위원장은 안철수, 문재인, 김두관 등 야권 주자들과의 격차를 더 벌렸다. 새누리당은 행여 오만하게 비칠까 우려해 겸손모드로 가고 있지만 물 넘치는 저수지처럼 가득한 낙관의 미소마저 숨기지는 못하고 있다.

과연 낙관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152석이라는 승리의 숫자 뒤에 숨겨진 내용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정당 득표율에서 새누리당은 42.8%이고 자유선진당을 합쳐도 46.0%이지만, 민주당(36.5%)과 통합진보당(10.3%)을 합치면 46.8%가 된다는 통계는 아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대목은 부산에서 민주당(31.8%)과 통합진보당(8.4%)이 얻은 득표율이 40.2%나 되고 경남에서도 36.1%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16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의 부산 득표율이 15.2%이었고, 17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29.9%를 얻은 것에 비교하면 상당한 이탈이다. 수도권과 2030 세대에서 뒤진 것도 부담스런 대목이다. 최근 3차례 대선에서 수도권과 2030 세대에서 이긴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이런 통계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역설적으로 야권의 패배 그 자체다. 총선에서 진 정당이 이어지는 대선에서는 이긴다는 막연한 추론 때문이 아니다. 공천 실수, 지도력 부재, 김용민 막말 파문 등 온갖 악재들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근소하게 졌으니 이를 추스르면 해볼 만하다는 논리 때문도 아니다.

진짜 위협은 야권이 제대로 풀 수 없었던 태생적 난제들이 선거 패배로 대부분 정리됐다는 점이다. 중도 이탈을 가져온 지나친 좌클릭, 통제 불능의 나꼼수 세력, 기반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통합진보당, 노무현의 가치에만 매달리는 친노 세력의 전횡이 패배의 아픔 속에서 자제와 자성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만약 야권이 총선에서 이겼다면, 이런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극심한 분열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속된 말로 미리 침을 맞아 야권이 정신차리고 하나로 뭉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 위원장이 박정희 시대를 뛰어넘는 또 다른 혁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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