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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푸르른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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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푸르른 날에'

입력
2012.04.2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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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삼았다고 했건만 막이 오르자 기이하게도 객석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몸과 말의 유희에 뛰어난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씨의 색채가 제대로 묻어난 덕분이다.

21일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푸르른 날에'는 '강철왕' '마리화나' 등을 통해 슬픈 이야기를 명랑하게 표현하는 데 남다른 재주를 보였던 고씨가 각색과 연출을 맡아 제대로 솜씨를 부린 작품이다. 글은 극작가 정경진씨가 썼다.

정혜(조윤미)와 민호(이명행)는 서로 사랑하지만 항쟁 과정에서 이별을 맞는다. 고문 후유증과 정신이상을 겪던 민호는 불가에 귀의해 여산이라는 법명을 얻고, 둘 사이에 생긴 딸 운화를 낳은 정혜는 민호의 형 진호(박윤희, 정승길)와 결혼한다. 연극은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시점인 현재의 정혜(정재은)가 운화(최광희)의 결혼을 앞두고 여산(김학선)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해 이들의 인생 역정을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되짚는다.

자칫 시대 배경의 묵직한 무게에 관객이 짓눌릴 법도 한 이야기이지만 만화적 설정과 그에 따른 과장 연기로 그 부담을 덜었다. 예컨대 30년 만에 마주한 정혜에게 여산은 차를 대접하지만 정혜는 긴 다탁 때문에 방정맞게 무릎으로 기어가 차를 받아 마시는 식이다. 그렇다고 시종 우스꽝스럽게만 표현한 것은 아니다. 김남주 시인의 '학살2'와 서정주 시, 송창식 작곡의 '푸르른 날' 등 시와 노래를 적절히 녹여 넣어 극중 인물들이 처한 현실의 아픔과 희망, 기대를 고조시켰다.

무엇보다 연극적인 장면 전환이 돋보였다. 암전을 최대한 절제하고 중첩되는 배우들의 움직임과 조명 변화 만으로 다양한 상황을 묘사했다. 속사포 같이 많은 대사를 쏟아내다가 금세 무심하게 표정을 바꿔야 하는 고선웅씨 연극 특유의 연기를 잘 소화한 것은 주로 젊은 배우들이다. 젊은 시절의 오민호를 연기한 이명행의 연기가 좋았다.

웃음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이야기가 후반부에 급하게 마무리된 것은 아쉽다. 하지만 젊은 관객과 무리 없이 소통하며 그들의 관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한국의 현대사를 효과적으로 인지시키는 큰 장점이 있는 연극이다. 5월 20일까지. (02)758-2150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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