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파이시티 개발사업 인허가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의 칼날이 현 정권 실세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이명박 정부의 대선자금 수사로까지 확대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검찰은 일단 “인허가 사업 비리 수사”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돈이 집중적으로 오간 시점인 2007, 2008년이 MB정권의 대선 선거운동 기간과 정권 초기라는 점에서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이 이명박 정부 쪽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만만치 않다.
인허가 비리 수사냐 대선 자금 수사냐를 가를 분수령은 25일로 예정된 최 전 위원장의 소환 조사가 될 전망이다. 최 전 위원장이 23일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언론을 통해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하며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여론조사를 위해 사용했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뇌물사건 수사에서는 돈의 사용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기 마련인데, 최 전 위원장의 이 발언으로 대선 자금에 대한 여론의 궁금증이 달궈진 만큼 검찰이 돈의 ‘출구’ 조사를 외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사팀 내에서도 “호랑이 등에 올라 타 내려올 수도 없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날 검찰이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돈이 건너간 정황을 확보했다”고 밝힌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 출범 이후 초대 방통위원장을 지낸 최 전 위원장이 이 시기에 돈을 받았다면 개인적으로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될 뿐만 아니라, 정권의 도덕성에도 치명타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시티 시행사 이모 전 대표로부터 최 전 위원장에게 흘러간 돈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비화할지 알려줄 방향타가 될 전망이다. 검찰은 현재 10억여원 정도가 이 전 대표로부터 브로커인 D랜드 대표 이모씨에게 전달됐고, 그 중 상당부분이 최 전 위원장에게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로비를 위해 건넨 돈이 61억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돈의 규모는 검찰이 규명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물론 브로커가 중간에 끼어 있어 ‘배달사고’가 있었을 가능성도 현재로선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파이시티가 정권 출범 2년여가 된 2009년 말에야 가까스로 건축 인허가를 받고 그 이후에도 자금난을 겪어 사업이 중단되는 등 사실상 ‘성공한 로비’로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이 전 대표의 주장대로 로비자금이 고스란히 정치권으로 들어갔을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이 전 대표는 이에 대해 검찰에서 “2008년 중반 돈 전달을 중단한 후부터 채권은행으로부터 사업을 포기하라는 보복성 압박을 받았고, 결국 파산 신청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 또 다른 정권 실세인 박영준 전 차관이 수사망에 올라 있는 것도 이번 수사가 MB정권을 뒤흔드는 뇌관이 될 가능성의 하나로 꼽힌다. 검찰은 “현재로서는 돈을 건넨 이씨의 진술 외에 구체적으로 돈이 오간 정황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미 돈을 줬다는 쪽의 진술이 나온 이상 박 전 차관 관련성도 살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부지에 터미널 외에 대형점포와 창고 등을 지을 수 있도록 용도변경을 허가해준 2006년 5월이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 시절이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시 측근으로 있던 서울시 고위공무원이 수사선상에 오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C&그룹 수사부터 최근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 수사까지, 잇달아 실패를 거듭했던 대검 중수부가 이번 수사를 명예회복의 계기로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점도 수사의 파고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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