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보건의료시스템은 세계가 본받을 만큼 우수하다고 한다. 특히 단기간 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보험제도의 실시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개발도상국들이 이러한 우리의 건강보험을 배우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다름 아닌 고령화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노인인구 증가 속도를 겪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2010년 전체 인구의 11%였는데, 2030년에는 24.3%로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대표적 노인성 만성질환인 고혈압과 당뇨병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그 적정관리는 매우 시급한 과제로 지적돼왔다.
만성질환 진료비는 2002년 4조8,000억원에서 2010년 15조2,000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고, 2010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전체 진료비의 34.9%를 차지했다. 고혈압 진료비만 따져도 건강보험에서 1조6,000억원이나 지불했다. 환자가 부담한 것까지 더하면 엄청난 금액이 추가된다.
그러나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의료자원의 배분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대형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은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지난해 소위 '빅5' 대형병원이 44개 상급종합병원 전체 급여비 5조7,000억원 중에서 37%를 차지하는 기형적 의료공급이 이루어졌다. 반대로 2000년 전체 진료비의 35.5%였던 동네의원 진료비는 매년 감소해 2011년에는 21.7%로 대폭 줄어들었다.
의원간 진료과목별 양극화도 심화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의료자원배분의 불균형은 의료 공급자에게 뿐만 아니라 보험재정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비용손실을 발생시킨다. 환자는 대형병원 선호 등의 의료이용 행태로 필요 이상의 진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2010년에 고혈압과 당뇨병 진료자 480만 명 중 종합병원을 찾은 환자만 140만 명을 넘었다.
이렇게 우려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의 만성질환자 건강관리 실태는 매우 심각하다.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30세 이상 성인의 28.9%가 고혈압 환자이고, 10.1%가 당뇨병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식으로 만성질환을 관리한다면 악순환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질병치료와 함께 예방과 검진 등 사후관리를 연계시키는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4월부터 도입된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이를 위한 첫 단초라 할 수 있다. 이 제도가 실시됨으로써 고혈압이나 당뇨환자가 동네의원을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이용할 경우 본인부담금은 30%에서 20%로 할인된다. 환자를 관리하는 의원은 결과에 따라 사후 인센티브를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 등이 내과 등에 환자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환자의 등록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반대하고 있어서 시행 초기 어려움도 만만치 않다.
의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성질환관리제의 장점은 명확하다. 질환 진행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환자에게 건강과 비용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혜택을 준다. 의원은 지속적인 관리로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살필 수 있어 적정치료로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독일 네덜란드 등 체계적 보건의료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실시하는 의료관리 형태이기도 하다.
저출산 고령화 등 녹녹치 않은 건강보험 환경에서 만성질환관리제를 사후 건강관리 시스템으로 확립시키는게 매우 중요해졌다. 이는 건강보험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박병태 국민건강보험공단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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