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 만개한 벚꽃이 후두둑 지고 막 싹을 틔운 나무들이 추워서 오들오들 떨던 그 이틀, 경기 평택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는 눈물과 분노의 자리가 있었다. 21일 평택에서는 쌍용자동차 희생자 추모대회가 열렸고, 22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청소년 20여명은 학생 죽이는 입시 경쟁 교육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그날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는 22개의 관이 놓였다. 2009년 2,646명 대량해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병과 돌연사 등으로 숨진 이 공장 노동자와 가족이 그만큼이다. 해고에 따른 생활고와 스트레스, 우울증이 사람을 잡았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77일간의 파업 이후에도 회유와 협박, 고소 고발, 가압류 등 여러 형태의 압박이 노동자들 피를 말렸다. 해고 노동자들의 외침대로 '해고는 살인이다.'
3년 내내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는데도 책임지거나 사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22명이라는 희생자 숫자보다 그런 무관심이 더 기가 막힌다. 당시 파업을 강제 진압한 경찰 총수는 이를 자신의 치적이라고 자랑했다. 대통령 승인을 받아서 했고 치하까지 받았다고 하니, 더 할 말이 없다. 파업이 끝난 후 회사는 무급 휴직자들에 대해 1년 내 복직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해고된 아빠가 다른 지방으로 돈 벌러 간 사이, 엄마가 숨진 줄도 모르고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빠에게 전화했던 두 어린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아무리 내 코가 석자라 해도 모른 척할 일이 아니다.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라고 넘길 수도 없다. 밥줄 끊기는 순간 발 디딜 곳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복지도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없는 이 나라 현실이니, 남의 일이 아니다.
22일 광화문광장에 모인 청소년들은 입시 지옥과 학교에 치어 세상을 버린 또래 친구들을 추모하는 성명서에서 이렇게 절규했다. "얼마나 더 죽어야 중단하시겠습니까."
성명서는 "지금 서울에서는 벚꽃이 만발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피지도 못하고 떨어져버린 우리 친구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관심도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우리 친구들의 죽음은 비교육적인 학교와 죽음의 입시 경쟁교육에 의한 타살"이라고 규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청소년 행복지수 꼴찌인 나라답게 이달 들어서만 중학생 2명이 자살했다. 17일 15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안동의 15세 여중생은 유서에 이렇게 썼다. "즐겁게 수업을 받기보다 강압에 의해 45분 동안 앉아 있는 훈련을 받고 있다." 그 전날 영주에서는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2 학생이 투신했다.
청소년 자살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자살 예방 교육을 한다고 어른들이 내놓은것 중에 '생명 사랑 서약서'가 있다. 내가 자살하면 슬퍼할 사람이 누군지 써보라는 항목 등이 있는 이 서약서 캠페인을 정작 아이들은 시답지않은 쇼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22일 광화문광장 행사를 한 청소년단체 '희망의 우리학교 만들기' 카페에 올라온 글은 대놓고 조롱조다. "자살하면 슬퍼할 사람? 자살해도 꿈쩍 안 하는 사람, 자살하면 책임이 돌아올까 전전긍긍하며 연막 터뜨리는 사람 명단부터 작성해야 할 듯."
이 카페 게시판에서 본, 피지도 못하고 져버리는 친구들을 안타까워하는 글은 뭉클하다. "힘들면 말을 해. 아프면 크게 울어. 그리고 죽지마, 제발 죽지마. 어떻게 하든 견디어 새 날을 보자." 하지만 아무리 말하고 크게 울어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꽃은 져도 명년 봄이 오면 다시 피건만, 사람은 한 번 가면 오지 않는다. 벼랑 끝에 몰리고 짓밟혀 끝내 세상을 버린 노동자와 어린 학생들의 목숨이 서러운 봄이다. 봄은 찾아왔건만은, 계절이 오는지 가는지 모를 넋들이 차가운 봄비에 한없이 젖었다.
오미환 문화부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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