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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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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 이신통을 찾아서 <16>

입력
2012.04.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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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묻지도 않고 당신 마음대로 대답하곤 하였다.

우리 딸이 소박맞은 것이 아니라, 정 끊는 칼이 없어 먼저 마음 준 사내를 못 잊는 것이라오.

은근히 넘보려던 사내들은 그런 못된 놈이 어디 사는 누구냐고 차마 묻지는 못했지만, 고슴도치 건드린 범처럼 일시에 사그라졌다. 우리가 색주가를 하고 있었더라면 엄마는 아마 단골손님을 모으려고, 바로 지금 서방을 고르는 중이라고 딴소리를 했을 거였다. 저자의 객점주들은 경쟁자일지언정 우리 집에서 잠자거나 밥 사먹을 일도 없고 술 먹을 일이란 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신통을 기다려보았지만 대보름에도 그는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 호열자나 장질부사에 걸려 노중 객사를 했나, 그도 아니면 떠돌아다니다 마음잡고 고향이라던 보은에 말뚝을 박아버렸나, 저도 아니면 어느 도방 대처에서 나 같은 속없는 년 만나 살림 차리고 들어앉았나. 스스로 소박맞고 강경 온 지 두 해가 지나도록 마치 나를 피하려는지 약을 올리려는지 그 잡것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나도 이제는 기약 없는 세월에 자식도 없이 시들어가는 나이가 되었다. 강변에 버들강아지 움트고 생강나무 꽃이 피어날 무렵에 고기잡이 어선들이 백여 척이나 몰려들었고, 이제부터 단오 철까지 연달아 파시가 설 모양이었다. 엄마는 예전부터 함께 살던 찬모 외에 안 서방 부부를 식구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강 건너 부여에서 소작 짓고 살다가 흉년에 볍씨까지 먹어버리고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여 솥단지와 이불만 걷어가지고 밤도망을 해왔던 처지였다. 집 근처에 그들 세 식구가 쓰러져 있는 것을 내가 텃밭 보러 나갔다가 데려와 살려냈던 것이다. 안 서방은 장쇠와 더불어 곁꾼으로, 그의 아내는 찬모를 돕는 부엌댁으로 한 식구가 되었고, 열한 살짜리 딸 막음이는 잔심부름을 맡았다. 파시 철이 오면 우리 집에 뱃사람이 올 리는 없었지만 어쨌든 강경 장이 대목이라 손님이 몰려들기 마련이었다. 앞채에 큰 봉놋방이 넷이나 되고, 뒤채에도 작은방 큰방 합쳐서 다섯이나 되고, 문간방이 둘이었다. 인근에서는 다리목 객점이 가장 번듯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손님이 몇 패 들어와 앞채가 거의 찼는데, 누군가 대문 안으로 들어서며 주인을 찾았다. 마방에서 말의 사료를 주고 있던 장쇠가 돌아보고는 그를 알아보았다.

박돌 아저씨 오셨어요?

잘 있었냐, 구례 댁두 별무고하지?

그는 갓에 두루마기에 행전 친 모습이 무슨 관아치 같아 보였다. 엄마가 손님맞이 방으로 쓰는 찬방에서 내다보다가 반기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누님 평안하우. 마흔 과부는 금과부라더니 중신 들어오것네.

에이 망칙헌…… 근데 어째서 혼자 오나?

엄마가 툇마루에 앉았던 나를 슬쩍 돌아보고는 말했고 그제야 나는 그 사내를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패거리를 잔뜩 끌고 왔지, 이 박돌이가 혼자 댕기는 거 봤소?

나는 무심하게 앉았다가 그가 누구라는 걸 확실히 알아보고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내가 어찌 이신통 일행이 찾아왔던 그날을 잊을 수 있으랴. 그는 이 서방의 노중 짝패였던 초라니 광대였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큼직한 봉놋방 둘 하구 작은방 하나만 내주시우.

밥식구가 모두 몇 명이여?

스물다섯인데, 닷새만 묵어갈라우.

내가 마음이 급하여 대문간으로 휙 나가보는데 벙거지며 패랭이며 더그레를 걸친 패거리들이 울레줄레 서 있었다. 이미 날이 어두워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따라 나오더니 내 소매를 잡아끌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서방은 안 왔다는구나.

듣자마자 나는 힘이 쪽 빠져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마당으로 들어서려니 박돌이 말을 걸었다.

이게 누구여, 시집간 딸내미 아녀?

어디 자네 딸내민가? 아무리 객점이지만 내외두 없이.

엄마가 박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공손하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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