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의 반정부 시위가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22일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서 2012 F1 4차 라운드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이슬람 수니파 정권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가 거세지면서 개최 여부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바레인의 민주주의와 왕정타도를 요구하는 '분노의 3일' 시위가 F1 개최를 계기로 불붙었다"고 22일 전했다. 20일부터 부다이야, 디라즈 등 시아파 거주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시위는 화염병이 등장할 정도로 과격 양상을 띠었다. 특히 시위에 참가한 36세 남성이 21일 시체로 발견되면서 F1 중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시위대는 F1이 예정대로 개최될 경우 국제사회가 민주화 요구를 물리력으로 탄압한 정권에 합법성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권운동가 나벨 라자브는 "F1 대회는 바레인 정국이 안정됐다고 호도하려는 독재자의 홍보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시위대는 대회 저지를 위해 선수단을 직접 표적으로 삼았다. 18일엔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던 인도팀에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스위스팀의 경주용 차량도 불길에 휩싸일 뻔했다.
그러나 바레인 정부는 국민통합과 경제적 효과를 이유로 22일 F1 결선 경기를 강행했다. 바레인은 2004년 첫 F1 그랑프리를 개최한 이후 입장권 판매와 관광수입 등을 통해 연간 5억달러의 재정 수입을 올리고 있다. 살만 빈 하미드 알칼리파 총리는 "대회를 포기하면 극단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대회가 아랍의 봄 여파로 취소된 점도 정부의 강경론에 힘을 실어줬다. 바레인 정부는 도심에서 F1 경기장 사이의 모든 도로에 군 병력과 무기를 배치하고 시위대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바레인의 반정부 시위는 수니파 왕정 붕괴를 우려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개입과 해군 5함대 기지가 주둔해 있는 미국의 미온적 대응 탓에 국제사회의 관심을 덜 받았으나,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AFP통신은 "지난해 2월 이후 시위 사망자가 적어도 50명은 넘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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