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영화 '아르마딜로'를 보면 분명 연출했으려니 하는 생각이 든다. 제아무리 카메라가 흔들리고 초점이 엇나가도 다큐멘터리인양 하는 가짜는 많지 않은가. '아르마딜로'도 자세한 정보를 접하지 않고 보면 영락 없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스크린 속 내용들이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허구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군대의 촬영 동의를 정말 얻은 것인가, 극적인 사건을 제대로 포착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모든 내용이 '진짜'다.
영화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덴마크군 소대의 6개월을 따라간다. 아프간 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이뤄지는 군인들의 질펀한 술자리와 그들을 환영하는 전장 부대의 한밤이 영화의 초입을 차지한다.
무료하기 그지없는 경계 경비가 이어지고 별 소득 없는 마을 수색이 계속된다. 마을 사람들은 간혹 저주를 퍼붓고, 작전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라고 하소연한다. 군인들은 자기들이 과연 전쟁터에 있는지 의심하며 웃음을 나누면서도 따분함을 견디지 못한다. 도색영화를 보며 히히덕거리고, 컴퓨터 오락게임으로 총질을 대신한다. 전장 밖보다 더 지루한 일상이 지속되니 한 병사는 이런 푸념까지 한다. "무슨 일이라도 터졌으면 좋겠다."
관객까지도 입가에 손이 갈 때쯤 영화의 호흡은 급속히 빨라진다. 수색을 나갔던 덴마크 군인들이 매복 중이던 탈레반 병사와 맞닥트리면서부터다. 카메라는 병사들과 함께 숨이 턱에 차도록 뛰고, 밭에 바짝 엎드리기도 하고, 건물 뒤에 숨어 적군이 어디 있는지 살피기도 한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 결과들이 드러난다.
병사들은 6개월의 아프간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떠날 때 패기와 긴장으로 가득했던 얼굴들은 안도감으로 채워져 있다. "축구라고 생각하세요. 경기를 해야 실력이 늘어요"라며 파병 전 부모를 안심시켰던 병사는 아무 말 없이 가족을 부둥켜 안는다. 영화는 그렇게 전쟁의 참상과 공포를 나지막이 읊조린다.
영화 속엔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이동 중인 탈레반 병사들이 덴마크군 폭격에 의해 지상에서 사라지는 장면(부대 작전 영상을 통해 전해진다)은 특히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 전자오락 같은 현대전의 모습이 야만적으로 다가온다. 2010년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프랑스영화비평가협회 주최로 열리는 비공식부문) 대상을 받았다. 감독 야누스 메스 패더슨.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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