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서 두부요리 전문점을 하는 이선호(55)씨는 올해 초 임대료 문제로 건물주와 다퉜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분이 터진다. 3년 전 폐점했던 식당을 인수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이제 잠실 일대에 맛집으로 소문이 난데다 매출도 처음보다 2배 이상 올랐다. 그런데 장사가 잘된다는 소식을 들은 건물주는 월 250만원이던 임대료를 400만원으로 한꺼번에 62.5%나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상가임대차보호법에 연간 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돼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주인은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법에 저촉되지 않으니 재계약이 싫으면 나가라”는 것이었다. 실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대료와 보증금을 합쳐 3억원까지만 보호하는데, 이씨의 가게는 월세를 전세로 환산(월세x100+보증금)했을 경우 3억원이 넘어 보호 대상이 안 된다.
자영업자들의 방패막이가 돼야 할 상가임대차보호법이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영세 상인들의 임대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법이지만, 적용기준이 너무 협소해 실제 법의 보호를 받는 점포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현행 법은 임대계약을 갱신할 때 보증금과 월세를 각각 9% 이상 올릴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서울의 경우 ‘환산보증금 3억원 이하’ 임차인만 보호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올리려는 건물주와 임대료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임차인 간의 이해관계는 상충되기 마련. 하지만 ‘을(乙)’의 입장인 임차인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임대료 탓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현실 만은 막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상가임대차보호법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대원 상가정보연구소장은 “현재의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소수 영세 상인을 제외하곤 임대료 폭등세를 제어하는 기능을 상실했다”며 “일괄 확대가 어렵다면 지역별로 상권을 세부적으로 나눠 적용기준을 차별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승재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통상 임대료 마찰은 장사가 잘되는 목 좋은 곳을 중심으로 불거지기 마련”이라며 “제도권 밖에 놓인 권리금을 제도화하는 것도 임차인의 임대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인위적 시장 개입에 대한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더 대표는 “임대료 인상 상한을 규제하기보다는, 임대료를 낮추거나 직전 계약 수준으로 유지하는 건물주에게 소득세 감면 등의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며 “무조건 임대료 상한만 제한하면 임대차보호법 기간에 올려 받지 못한 임대료가 새 임차인에게 한꺼번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박관규 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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