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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덫에 걸린 자영업자/ 임대료 올라도 불황탓 권리금은 하락…가게 내놓지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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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덫에 걸린 자영업자/ 임대료 올라도 불황탓 권리금은 하락…가게 내놓지도 못해

입력
2012.04.22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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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명동의 한 상가 건물. 인접한 좁은 골목에는 이슬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도 중국ㆍ일본인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화장품과 옷 가게, 음식점 직원 등은 골목에까지 나와 호객 행위에 열심이다. 그런데 활기찬 상권 분위기와는 달리, 이 건물에 입주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입구는 셔터로 굳게 닫혀 있다. 2003년 개점 이래 하루도 쉬는 날이 없던 명동의 터줏대감인지라, 레스토랑을 찾아 온 손님들이 의아해하며 발길을 돌린다.

마침 셔터를 열고 나오던 주인 박철홍(가명ㆍ48)씨가 입구에서 손님과 마주쳤다. 그는 “죄송합니다, 임대료 문제로 문을 닫게 됐습니다”라고 이해를 구했다. 건물주가 월 2,200만원(보증금 4억원)이던 임대료를 대폭 올려달라고 요구해, 고민 끝에 가게를 접기로 한 것이다. 그는 “아직 옮겨갈 점포를 구하지 못해 조리도구, 가구 등 짐도 못 빼고 있다”며 “이 자리에는 자금력이 풍부한 커피 프랜차이즈 회사의 직영점이 들어올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도 아랑곳없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비싼 임대료 탓에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창업 희망자들의 점포 임대수요가 급증하자,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무지막지한 수준으로 올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 한국일보가 서울 명동, 강남역, 홍대입구, 건대입구, 영등포역, 잠실 등 6개 핵심상권의 점포들을 조사했더니 월 임대료가 매출의 20~50%(평균 28.5%)에 달했다. “휴일도 없이 한달 내내 열심히 벌어 임대료만 내고 있다”는 자영업자들의 한탄이 과장만은 아닌 것이다.

서울 지하철2호선 신천역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모(58ㆍ여)씨. 매일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손님을 맞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집에 가져가는 돈은 월 100만원 남짓이다. 기업형슈퍼마켓(SSM)과 편의점의 등장으로 매출은 나날이 줄고 있는데도 임대료는 끊임없이 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도 재계약을 하며 월세를 25%나 올려줬다. 그는 “장사가 갈수록 안 되는데도 임대료는 꾸준히 올라 매출의 절반을 넘어섰다”며 “월세를 올려주지 않으면 나가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유명 프랜차이즈도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곳이 많다. A베이커리는 지난해 11월 명동 직영점에서 철수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 480만원을 임대료로 지불해왔으나 상가 주인이 1억원에 90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A베이커리 관계자는 “우리 가맹점들만 봐도 최근 1년 동안 임대료가 평균 12.6% 상승했다”며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자가 건물이 아닌 경우에는 임대료가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높은 임대료에 치여 계약 만료 때마다 점포를 옮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박모(43ㆍ여)씨는 최근 7년간 학원을 3번이나 옮겼다. 처음에는 학원 밀집지역을 고집했으나,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빈 사무실이 많은 업무용 건물에 자리잡고 있다. 박씨는 “작년에 건물주가 월 200만원이던 임대료를 300만원으로 50%나 올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사했다”며 “이 곳은 사무실 밀집구역이라 학원업종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줄어드는 매출을 감안하면 월 200만원이 임대료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박씨는 시설 투자비 부담이 비교적 적은 학원업종이어서 과감히 옮겼지만, 거액의 권리금을 내고 들어간 자영업자들은 이사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임대료는 올라도 권리금은 매년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IT기업에서 은퇴한 조모(53)씨는 ‘먹는 장사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에 강남역 인근에 순대국집을 차렸다. 다행히 단골이 하나 둘씩 생기며 매상이 꾸준히 늘어났다. 그러나 매달 손에 쥐는 돈은 불과 200만원 안팎. 무엇보다 월 임대료가 600만원으로 매출(2,000만원)의 30%나 되는 게 가장 큰 부담이다.

그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데도 월세가 비싼데다 재료비, 인건비, 각종 공과금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면서 “게다가 권리금을 1억9,000만원이나 주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5,000만원 이상 떨어져 가게를 내놓지도 못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실제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 반면, 불황 여파로 점포 권리금은 내려가는 중이다. 부동산정보 제공업체 에프알인베스트먼트가 서울과 수도권 10개 주요 상권(강남역, 명동, 신촌, 관철동, 건대입구, 노원역, 신림역, 천호역, 분당 서현역, 인천 구월동)의 1층 점포(15평 기준) 시세를 조사(2011년 1월 기준)한 결과, 2010년 1월에 비해 권리금은 평균 4,000만원 하락한 반면 월 임대료는 500만원 가량 올랐다.

안민석 에프알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불황에 따른 조기 퇴직과 베이비부머의 은퇴 등으로 창업희망자가 급증하면서 그간 임대료가 별로 오르지 않던 신림역, 노원역 등 구도심 역세권까지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며 “하지만 창업시장의 과포화와 매출 감소 등의 영향으로 권리금은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고 분석했다.

김세빈 인턴기자(서울시립대 국사학과 4년)

김아람 인턴기자(숭실대 글로벌미디어학부 3년)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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